나는 천천히 걸으며 내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것들을 휴대전화로 찍는 데 만족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카메라를 사서 다시 사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배우고 싶은 것들을 익히느라 바쁜 날들을 보냈다. 주일에는 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토요일에는 산과 들을 다니며 자연을 사랑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는 일에 늘 진심이었다.
어느 해인가 창덕궁 후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해설하는 분을 보고 감동한 나는 화성을 해설하는 ‘화성길라잡이’가 되었다. 교육받는 동안 북수동성당이 성지이고 화성 곳곳에도 순교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젠가는 성지에서도 꼭 안내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렵 북수동성당에서 수원성지해설사학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안내를 보고 참여해 전 과정을 이수했다. 하지만 그 뒤로 활동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아주 중요한 한 분을 만났다. 극단을 운영하는 연출가였고, 삶 자체가 연극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분이었다. 그분을 만나면서 나는 연극이라는 아주 생소한 세계를 살아 보게 됐다. 포크댄스와 펜싱, 탭댄스, 호흡법 등 연극의 기초교육을 받으며 아마추어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조금이나마 익힌 것 같다.
지금도 처음 무대에 섰을 때의 떨림이 생각난다. 그립지만 처음은 단 한 번뿐이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몇 년 동안 열 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하며 쉴 새 없이 무대에 섰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으리라.
선생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지만, 나는 믿고 싶다. 어디에 계시든 여러 사람을 모아 놓고 지금도 인상을 쓰며 모호한 작품을 연출하고 계시리라고.
그 시절 나의 믿음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아 좀처럼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성가대원으로서 주일미사만큼은 열심히 봉헌했다. 기적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눈에 보이는 믿음을 원했지만 나는 조용한 신앙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나 또한 직장 생활 외에는 아무 활동도 할 수 없어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족과 사별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암 선고를 받았다.
나는 두려워하지도,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왜?’라는 의문도 없이 담담하게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다. 이제야 나는 통증 없이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분, 언제 어디서나 늘 나와 함께 계시는 분께 기도한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봉성체 봉사자의 소임도 맡겨 주셨다. 어르신들이 보여 주는 지순한 신부님 사랑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오히려 내가 위로받곤 한다.
어느 날 주보에 실린 가톨릭사진가회 회원 모집 안내를 보았다. 나는 사진을 다시 시작해 보리라 결심하고 수강 신청을 했다. 얼마 후 드디어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주님은 나를 어떻게 하시려는 것일까?

글 _ 조웅식 가타리나(수원교구 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