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일 광주엠마우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필리핀 신자가 “신부님 여권 좀 복사해 주실 수 있어요?”라고 부탁하기에 “물론이지요”하고 아주 기쁘게 대답했다.
복사기에 다가가 복사를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흰 종이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복사기 토너가 떨어져 복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분에게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복사 기능이 있는 프린터기로 갔다.
그런데 프린터기에서도 또 하얀 종이만 나왔다. 프린터기에도 잉크가 없었다. 그날은 주일이었기 때문에 새 잉크도 살 수가 없었다. 결국 “도와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고 그를 실망시킨 것에 용서를 구하며 여권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그 필리핀 신자는 백지와 여권을 받아 들고 나에게 미소 지으며 “신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지금 당신에게 백지를 주었지 복사된 것을 주질 못했잖아요. 왜 저에게 감사하다고 하지요? 당신이 요청한 것을 가졌을 경우에 제게 감사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그분은 “아니에요, 신부님. 신부님이 틀렸어요. 신부님은 저에게 신부님의 시간을 주었고 제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었고, 저를 도우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했고…. 이 모든 것이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그분의 대답에서 나의 삶과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예수님의 복사본이 되고 싶지만, 매번 실패한다. 예수님 사랑의 복사본이 아닌 그 필리핀 사람에게 준 백지와 더 닮아있는 나의 사랑을 보게 된다. 변화도 없고, 커다란 결과물도 없는 그저 하느님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너무도 많은 실수와 죄를 짓고 예수님의 참모습을 내 안에서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나의 삶에서 어떤 결과물들을 찾고 계신 것이 아니라 내가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계명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분께 나의 시간을 드린 것과 나의 노력을 보면서 늘 고마워하신다. 그 필리핀 분이 내가 준 백지를 받고도 감사하다고 말해준 것처럼 말이다.
하느님은 내가 그분의 ‘완전한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그분의 ‘이미지를 닮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기뻐하신다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실수와 실패의 경험은 나를 성장시킨다. 참을성이 없었던 경험은 인내심을 깨닫게 해주고, 용서하지 않은 경험은 용서와 자비를 배우도록 해준다. ‘고장난 복사기’가 잉크와 토너를 사서 미리 준비하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처럼.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다 보면 하느님께서 주신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하느님의 이미지가 내 삶에 천천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장난 복사기가 때로는 유익할 수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1코린 1,27-30)

글_이청우 마우리찌오 신부(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광주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