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다시 평화의 섬 제주에 다녀왔다. 3년 전, 국제평화학과 가톨릭교육학을 접목해 만든 평화교육 프로그램인 ‘삶을 살리는 평화캠프’의 첫발을 떼었다. 교육 현장의 중심이 아닌 시민 단체와 교회 기관에서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였는데, 서귀포 강정마을의 평화센터에서 시작한 평화캠프가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특히 이번에는 지난해 참여한 멋진 청년들의 주체적 역할이 더해져, 다양한 참여자들과 함께 더욱 풍성하게 구성되었다. 언제나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삶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반갑고 신비롭다. 더욱이 첫 캠프에서 청소년으로 만났던 친구가 청년으로 성장하고, 또 친구까지 초대해 같이 온 모습을 보니 더욱 기뻤다.
첫 평화캠프의 소중한 기억, 그중에 자꾸만 떠오르는 한 얼굴이 있다. 활기찬 얼굴로 재잘거리던 ‘희’의 모습이다. 왠지 SNS 활용을 두려워하는 나는, 참여자를 모집할 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던 이전 참여자들에게 조심스레 소식을 전하며 안부를 전한다. 그때마다 항상 가장 기쁘게 응답하던 희와 어느 날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안읽씹.’ 대학 입학을 앞두고 평화캠프에 참여했던 희가 신나게 청춘을 즐기느라 카톡을 읽을 틈도 없나 보다 가벼이 넘겼는데, 희와의 채팅창에서 1이 한참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후, 희의 전화번호가 바뀌고 연락도 두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정보가 도용되고 사기를 당했다는 거다. 아, 왜 힘든 환경에 힘듦은 더 쉽게 겹쳐지고, 열악함은 쉬운 공격의 대상이 되는 걸까. 좀 더 자주 연락해 볼 걸 그랬나. 온갖 자책과 염려가 쌓인다.
내가 평화교육을 통해 만난 이들은 참여 동기부터 성장 배경까지 다양했다. 평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활동을 겸비한 청년부터 그저 단순하게 지인 추천으로 여행객 모드로 온 청년, 탄탄한 직업을 지닌 청년과 진로를 탐색 중인 청년,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랐거나, 가까운 가족에게 폭력을 당하며 자란 청년, 분쟁 지역을 떠나 바다 건너 먼 나라로 피난을 온 청년까지, 그런 색다름은 서로에게 더욱 다채로운 배움을 주었다.
구획 지어진 교육 현장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의 만남이 주는 혜택은 엄청난 자원이 되지만, 평화에 대한 고민이 현실의 억울함과 비탄한 삶을 마주하면 다시 어쩔 수 없이 ‘왜 그런 세상이냐’고 또 주님께 묻게 된다. 때론 버려지고 때론 도망쳐야 하는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밝게 자라며 꿈을 키워가기도 한다. 그런데 돌봄의 빈틈을 이용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다시 맨땅에 내동댕이치고 황야로 내쫓는다.
그리 기쁘게 웃던 희가, 어쩌면 그렇게 희망을 잃었을까 봐 겁이 난다. 아이에겐 잘못이 없다. 미숙한 어른이, 또 그런 어른을 키운 그 위의 어른들이 만든, 그런 잘못된 세상을 방관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평화를 공부한 거다. 그 잘못된 회로를 끊어낼 수 있는 끈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만난 걸 거다.
어딘가에 있을 거다, 그런 희망의 회로가. 주님은 구체적인 상황과 사람 안에서 기적을 행하시기에, 알게 모르게 구성한 다양한 관계망이 결국 우리를 살릴 거다. 희야! 연락 한번 줄래? 우리가 함께 웃던 그 시간에 기대어, 같이 가 보자! 다시 기쁜 시간을 살아갈 희(喜)를 찾아서, 이 글을 띄운다.

글 _ 손서정 베아트릭스(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