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거리장단에 맞춰 장구 소리가 우렁차게 흥을 돋우고, 성가대가 신명 나게 소리를 내자 어깨가 절로 덩실덩실 들썩인다. “모든 천사 성인들 마중 나오고 아들 예수님 양팔 벌려 어머니 맞으시네.”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어머니 하늘로 오르셨다.
민요 소리를 흥겹게 흉내 내며 어깨춤을 추던 그날이 떠오른다. 한복도 입지 않은 채 치맛자락을 살포시 잡고, 발끝은 버선코처럼 허공으로 내밀곤 했다. 발뒤꿈치로 사뿐히 바닥을 디뎌 앞으로 발을 내디디면, 어느새 엄마도 자리에서 일어나 흥겨워 내 뒤를 따르셨다. 생전 엄마가 그토록 즐거워하셨던 놀이였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엄마는 나를 알아보았지만,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존재와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것만은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당신이 이 세상에 낳은 자식들의 이름을 묻고 또 물었다.
살아생전 엄마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나는 모질게 엄마로부터 그것을 앗아 버렸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요양원으로 보내져야 했던 당신은 직립을 포기하셨다. 직립을 포기하면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으로 내몰렸을 때 나는 세상의 잇속이 우선이었다. 더구나 사회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었다.
인간의 육신은 영혼이 머물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어떻게 돌아보느냐에 주의하시오. 썩어 가는 것을 생각하지 마시오. 뚫어지게 보시오. 당신은 사랑하는 고인의 살아 있는 빛을 하늘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오.” <레 미제라블>의 말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나를 사멸 속으로 잠식시켰다. 나는 무덤을 떠올리며 육신에 집착해 갔다. 엄마가 겪은 육신의 고통에 매몰되어, 어느새 그 고통과 치매를 앓았던 정신까지 닮아가는 것 같았다.
고통을 덜기 위해 무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무덤은 자연으로 돌아간 육신의 자리이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정의했던가. 나에게도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길이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충실하기를 바란다. 이제 별을 바라보며 하늘의 별 속에서 엄마를 찾을 수 있겠다.
이사 오기 전 본당 성령기도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던 이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작은 흐느낌으로 시작된 소리는 어느새 깊은 통곡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울부짖음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나 역시 고통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신음하는 이들의 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귀가 몇 배나 열려 그들의 신음이 마치 대형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다가왔다.
신음하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신다. 골고타 언덕을 걸어가시는 예수님, 그 고통의 십자가 지심은 곧 내 어머니의 고통이었다. 그 고통으로 몰고 간 이는 바로 무지한 나였다. 우리의 고통은 결국 서로를 향해 얽혀 있지만, 그 고통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사랑임을 우리는 안다.
지난날 성체를 영하는 일이 습관에 불과했다면 오늘의 영성체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류 구원을 위해 강생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이 잔치를 통해, 어머니의 삶의 역사를 깊이 기릴 수 있게 되었다. 약해져만 가던 사랑을 일깨워주고 북돋아 주는 성체를 오늘도 감사히 모신다.
“우리 어머니, 푸른 옷고름 날리며 하늘로 오르시네 하늘로 오르시네.”
글 _ 이경순 그라시아(대구대교구 다사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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