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2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광복절 특집]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메우스 신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141호인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항일운동을 지원하는 미주 한인사회에 전달하고자 제작됐다. 이 태극기의 오른편 상단에는 김구 선생이 직접 쓴 글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우사(梅雨絲)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광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매우사 신부’는 미주 한인사회에 이 태극기를 전달한 인물인 벨기에 출신 사제 샤를 메우스 신부(가롤로·Charles Meeus·1909~1974)의 중국 이름이다. 메우스 신부는 이 태극기를 194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전달했다. 이후 후손들이 보관하던 태극기는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됐고, 2021년 보물 제2141호로 지정됐다.

이처럼 한국 항일활동에 도움을 줬던 그는 훗날 한국으로 파견되면서 우리와 깊은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한국에서는 ‘차매우(車梅雨)’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선교를 펼쳤던 메우스 신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중국에서 항일운동… 김구 선생과 친분

벨기에 신학생이자 전교협조회(Société des Auxiliaires des Missions, SAM) 회원이었던 그는 1935년 우연히 중국 하이먼교구 주카이민(시몬) 주교와 인연을 맺고, 1936년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뒤 귀화한다. SAM 회원은 파견지역의 교구장 주교에게 순명하며 현지인과 똑같은 생활조건으로 사는 것이 목적이자 특색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메우스 신부는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이면서,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위빈 주교(于斌·1901∼1978) 등과 친분을 맺으며 항일운동에도 참여한다. 메우스 신부가 김구 선생을 알게 된 것도 위빈 주교를 통해서였다.

메우스 신부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했던 송명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전문위원은 “메우스 신부는 김구 주석을 존경했고, 안중근(토마스·1879~1910) 의사의 아들 안준생(마태오·1907~1952)의 통역으로 여러 차례 김구 주석과 동지적 신뢰를 쌓았다”며 “메우스 신부는 단순히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전달한 인물을 넘어,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우리 민족의 아픔에 공감했던 진정한 대한민국의 광복운동 조력가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러 의미에서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국보로 지정되는 것이 마땅하다”며 “특히 메우스 신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메우스 신부는 중국을 점령한 공산당의 탄압에 의해 1955년 추방되고 벨기에로 돌아가야만 했다.

한국에서 펼친 사랑의 선교

메우스 신부는 1957년 대구대교구 소속 사제로 파견되며 한국과의 두 번째 인연을 시작했다.

미8군부대 군종신부로 임명된 메우스 신부는 구미 금오산 정상에 설치된 무선 중계소 근무 장병들의 미사 봉헌을 위해 거친 길을 오르내렸다. 위트가 넘치던 메우스 신부는 미군방송에 출연해 우스꽝스런 1인 2역 모노드라마를 진행하기도 했다. 1961년부터 선종 직전까지는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 지도신부로 사목했다. 

수도원 성당이 한때 준본당이 되면서, 그는 지역민들에게 본당 신부 역할을 하며 사랑의 선교를 펼쳤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쾌활하고 열린 자세로 종교를 넘어 모든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말한다. 오토바이 마니아였던 그는 지역민의 빠른 발이 되어줬고, 장날이면 배달꾼 역할을 자처했다.

메우스 신부는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 편집동인으로도 활동했던 평신도 선구자 김익진(프란치스코·1906~1970) 선생과 수묵추상화 대가 지홍(智弘) 박봉수(니코데모·1916∼1991) 화백 등 국내 예술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으며 그들의 영적 아버지이자 허물없는 친구로 지냈다. 

특히 김익진 선생과는 학문적이며 정서적인 친구 사이였다. 중국의 석학 우징숑(吳經熊·1899~1986) 박사가 자신의 신앙 자서전 「동서의 피안」 한국어 번역을 김익진 선생에게 부탁했는데, 그 매개 역할을 한 사람이 우징숑 박사의 지인이었던 메우스 신부다. 그 일을 계기로 메우스 신부와 김익진 선생은 자주 만나 대화하고 사제관 정원을 함께 가꾸는 등 깊은 우정을 나눴다.

김익진 선생의 딸인 예수 카리타스 우애회 김화영(소화 데레사) 회원은 “차매우 신부님과 아버님이 만날 때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며 “신부님은 지역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셨으며,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시고자 많이 노력하셨다”고 기억했다.

묵묵히 또 강하게 하느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던 메우스 신부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1974년 향년 65세로 선종했다. 그의 유해는 미국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메리놀 묘지에 안장돼 있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8-1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8. 12

콜로 4장 2절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