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8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예술로 빚은 신앙] 첫 만남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예술과 신앙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때로 절묘하게 만난다. 종교미술은 정신을 물질로 드러내고, 물질을 통해 다시 정신을 일깨운다. 예식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그 쓰임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 예술과 신앙은 하나가 된다.

세례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포일본당 신부님이 미술 전공자들을 성당으로 불러 모았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회색 시멘트벽이 그대로 드러난 성당에 임시로 걸 14처를 그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화가 중에는 이미 성화를 그려본 분도 있었지만, 나처럼 신앙도 그림도 처음인 경우도 있었다. 주임신부님은 우리에게 가톨릭 성물의 역사와 14처의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14개의 쪽지 중 나는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뽑았다.

당황했다. 미술대학을 나왔지만 입체를 다루는 조소를 전공했고,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도 오래였다. 무엇보다 초보 신자라 교리도, 예수님의 수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난한 유학생의 아내로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외로움과 생활고를 견디다 교회를 찾았다. 남편이 개신교에 비판적이어서 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한인성당이었다. 

개신교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가르친 적은 있었지만, 정작 나는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이들은 노아의 방주와 에덴동산을 즐겁게 그렸지만, 내게 성경은 여전히 낯선 이름이 가득한 두꺼운 책이었다.

귀국 후 포일본당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그런 내가 예수님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신부님을 찾아가 말했다.

“신부님,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못 하겠습니다.”

며칠 뒤 본당의 큰 수녀님에게 전화가 왔다.

“제르트루다, 언제 시간 나시나요?”

그렇게 시작됐다. 수녀님의 일대일 신앙강좌가. 그날부터 수녀님은 매일 저녁 우리 집으로 오셨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수녀님은 곁에서 기도하며 14처의 의미와 예수님의 수난을 들려주셨다.

유화를 다룬 경험이 없어 파스텔로 그림을 그렸다. 손가락으로 색을 문지르다 보면 얼굴에 가루가 묻곤 했다. 수녀님이 흰 손수건으로 내 볼의 파스텔 자국을 닦아 주시던 감촉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림은 사흘 만에 완성됐다. 액자에 넣은 14처가 성당 벽에 걸리자 신자들은 그 앞에서 기도했다. 많은 신자가 내 작품을 보고 가는 것이 부끄러워 미사 중에 몰래 내 그림을 바라보곤 했다.

한 달쯤 뒤 외벽 공사가 시작되며 그림이 사라졌다. 성당 사무실에 찾으러 갔더니 직원은 뜻밖의 말을 전했다.

“주교님께서 마음에 드신다고 가져가셨어요.”

며칠 뒤에는 주교님에게 감사 전화까지 받았다.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했던 그 경험은 내 신앙과 작품 활동의 출발점이 됐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의 기억을 품고 여전히 흙을 만지고 있다. 예술과 신앙이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 시작된 길을 지금도 묵묵히 걷고 있다.

글 _ 추명희 제르트루다(수원교구 가톨릭미술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8-1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8. 18

콜로 2장 7절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