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 통해 전달되는 ‘참사랑’, 하느님과 인간의 영적 우정
기쁨·평화·자비 불러일으키며 선행·자선 실천하도록 이끌어
상호 혐오 가득한 현대사회… 형재애적 유대 위한 버팀목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흔히 개인적인 감정이나 일시적인 열정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참사랑(caritas)을 단순한 정념(passio)이나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인간의 영혼 안에 주입되는 초자연적인 덕이자 습성(habitus)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적인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며, 하느님이 당신의 참행복을 인간에게 전달해 주심으로써 맺어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인 우정(amicitia)이다.(II-II,23,1)
토마스는 참사랑이 본성적인 욕구인 에로스(eros)와 구별됨을 명확히 하며, “참사랑은 우정이지만,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고 소중한 분인 하느님을 향한 우정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진 것”이라고 역설한다.(「명제집주해」III,27,2,1,ad7) 결국 참사랑은 인간의 노력을 넘어선 신적 본질에 대한 참여이며, 하느님과 인간이 생명을 공유하는 통교(communicatio)의 선물이다.
더 나아가 토마스는 ‘참사랑이 모든 덕의 어머니’이며 “모든 덕의 형상”(forma virtutum, II-II,23,8)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도덕적 행위라도 참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과의 일치에 도달할 수 없다. 그것은 ‘덕의 거짓된 유사품(falsa similitudo virtutis)’에 불과하며, 엄밀히 말해 악습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한다.(II-II,23,7)
그런데 토마스는 이러한 원론적인 체계화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참사랑이라는 덕이 인간의 내면과 외적 행위에 미치는 구체적인 효과들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진정한 평안과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소중한 지침을 발견할 수 있다.
참사랑의 내적 효과: 기쁨, 평화 그리고 자비
토마스는 참사랑이 인간 영혼 내부에 일으키는 첫 번째 효과로 즐거움(gaudium) 또는 기쁨을 꼽는다. 이 즐거움은 자신이 사랑하는 선(善)이 현존할 때 발생하는 결과이다.(II-II,28,1)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가 물질적 성취나 타인의 인정과 같은 가변적인 선에 행복의 근거를 두기에 끊임없는 불안과 우울을 겪는다. 그러나 토마스는 참사랑의 대상인 하느님의 선하심은 결코 변하지 않기에, 이를 통해 얻는 영적인 즐거움은 어떤 외부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기쁨이 된다고 설명한다.
둘째 효과인 평화(pax)는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의한 바와 같이 “질서잡힌 평온함(tranquillitas ordinis)”이다.(II-II,29,1) 토마스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들이 하나의 참된 선인 하느님을 향해 올바르게 질서잡힐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고 본다. 현대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와 무한 경쟁 속에서 발생하는 내적 불화는 욕망의 무질서에서 기인한다. 참사랑은 인간의 의지를 최고선에 결합시킴으로써, 내면에 상충하는 갈망을 조화롭게 통합한다.
참사랑의 또 다른 내적 효과인 자비(misericordia)는 타인의 ‘비참함(miseria)’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동정심이며, 이를 돕고자 하는 의지적 움직임이다. 토마스는 자비가 하느님을 향한 사랑보다는 낮지만, 타인을 향한 덕들 가운데서는 가장 큰 덕이라고 평가한다.(II-II,30,1)
참사랑의 외적 효과: 구체적 실천으로서의 선행과 자선
참사랑은 내면의 변화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외적인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 그 첫째는 선행(beneficentia)이다. 토마스는 선행이 다른 사람의 선을 원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과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선행은 기회가 닿는 대로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려는 자발적인 자세에서 기인한다.(II-II,31,1)
둘째는 구체적인 자선(eleemosyna)이다. 토마스는 이를 육적인 자선과 영적인 자선으로 세분화한다.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등의 육적인 자선뿐만 아니라, 무지한 이를 가르치고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며 죄짓는 이를 훈계하는 영적인 자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II-II,32,1)
인공지능 시대에 정보의 비대칭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지식을 공유하거나, 극심한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행위는 현대적 의미의 탁월한 자선이다. 특히 토마스는 영이 육체보다 고귀하므로 영적인 자선이 우선이지만,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는 육적인 자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지침을 제시한다.(II-II,32,3)
형제적 교정: 혐오의 시대에 필요한 사랑의 훈계
외적 효과의 마지막인 형제적 교정(correctio fraterna)은 형제가 죄를 짓지 않도록 막는 영적인 자선의 일종이다. 이는 물질적인 도움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의 행위로 간주된다. 토마스는 형제적 교정이 공동선을 위한 정의의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상대방이 잘못을 바로잡아 참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는 참사랑의 실천이라고 본다.(II-II,33,1)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 만연한 온라인상의 무분별한 비난은 타인의 잘못을 배척과 혐오의 수단으로 삼는다. 반면 토마스가 제안하는 형제적 교정은 상대방의 품위를 존중하며, 그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은밀하고 자애로운 권고이다. 만약 교정이 상대방을 더 악화시킬 것이 예상된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토마스의 조언은(II-II,33,6), 진정한 사랑 없는 비판이 오히려 공동체에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토마스에게 참사랑은 일시적인 쾌락의 허무를 뚫고 영원한 평온과 진정한 행복을 성취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이정표다. 지식이나 예언과 같은 다른 모든 능력은 현세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참사랑만은 내세에서도 영원히 지속된다. 더욱이 참사랑의 내적, 외적 효과들은 파편화된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실질적인 약방문이 된다.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비는 단순한 감상적 동정을 넘어선 윤리적 태도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난민 문제나 소외 계층의 빈곤 문제를 대할 때 참사랑을 지닌 이는 그들의 비참함을 자신의 결함으로 인식하고 이를 치유하려 노력한다. 이는 자선이 시혜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맺어진 형제애적 유대라는 영적 기초 위에서 수행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글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