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등 격변기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신앙과 양심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한국의 ‘현대 순교자’들의 명단이 작성됐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12월 1일 회의를 갖고 사무처가 교구와 수도회, 대한성공회 등의 자료를 모아 마련한 한국 ‘현대 순교자’ 215명의 명단을 영문으로 작성, 로마로 보내기로 했다. 교황청 2000년 대희년위원회 새 순교자 위원회의 요청에 따른 이 명단은 로마에서 전 세계 교회의 명단을 모두 모아 대희년에 맞춰 ‘현대 순교록’으로 작성된다. 이번에 작성된 목록은 성공회 6명 외에 209명이 가톨릭이며 개신교는 포함돼 있지 않다.”(가톨릭신문 1998년 12월 13일자 1면)
제삼천년기와 새로운 순교의 시대
한국교회의 역사는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성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20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번 박해와 순교의 시대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고 참혹한 종교 박해가 자행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의 독재 정권과의 충돌 등은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피로써 신앙을 증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며 발표한 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를 통해 “제2천년기 말에 와서 교회는 다시 한번 순교자들의 교회가 되었다”고 천명하며, 전 세계 지역교회가 20세기에 피 흘린 신앙의 증인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명부를 작성하여 영원히 기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통해 103위 순교 성인이 시성됐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으로 124위 순교 복자가 시복되는 등 초기 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현양 작업이 괄목할 만한 결실을 봤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조사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교회사적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교황청의 요청에 부응해 1997년부터 20세기 순교록 작성을 위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고, 이듬해인 1998년 12월 1일 상임위원회에서 첫 번째 결과물인 한국의 ‘현대 순교자’ 215명의 명단을 확정하고, 12월 4일 이를 교황청에 제출했습니다. 이후 조사가 계속되면서 1999년 8월 25일과 12월 10일 두 차례에 걸쳐 6·25 전쟁 당시 희생자 24명이 추가로 제출됐고, 이에 따라 한국교회가 대희년위원회 새 순교자 위원회에 제출한 ‘현대 순교자’는 모두 23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현대 순교자 시복 추진
이 명단은 주로 6·25전쟁과 제주교난 당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하되, 성공회 신자 6명이 포함돼 있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1998년 당시 이 명단은 완결된 것은 아니었으며 미처 확인하지 못한 순교자들이 추가되거나, 명단에 포함돼 있던 이들 중 자격 조건에 못 미치는 경우 제외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명단에 포함된 215명 중 한국인이 162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외국인은 53명이었습니다. 독일 출신이 가장 많아 29명이었고, 프랑스 13명, 아일랜드 6명, 미국 3명, 벨기에 2명 등이었습니다. 평신도가 절반이 넘는 121명이었고, 사제 57명, 남녀 수도자 26명, 주교 3명, 신학생 2명이었습니다.
천주교 소속 209명을 살펴보면 수도회 소속 순교자의 희생이 두드러집니다. 성 베네딕도회가 33명으로 가장 많으며, 파리외방전교회가 12명,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8명을 기록했습니다. 수녀들의 경우에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4명,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3명,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와 가르멜 수녀회가 각각 2명, 메리놀 외방 전교회 1명입니다.
특별히 외국인 선교사 53명 중 독일인이 29명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덕원과 원산, 함흥 등 북한 지역에 진출하여 활동하던 독일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공산 정권의 집중 표적이 되어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이 명단은 크게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첫째는 1901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신축교안(제주교난) 당시 희생된 51명의 천주교 신자입니다. 제주교난은 무속 신앙과 지역 토착 세력, 봉세관의 조세 수탈에 반발하는 민중의 불만이 일부 천주교 신자들의 폐단과 얽혀 발생한 대규모 민란으로, 관덕정 등지에서 약 600여 명의 신자가 학살당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둘째는 6·25전쟁 전후 북한 공산 정권과 남침한 인민군 그리고 좌익 세력에 의해 처형되거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한 희생자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정치적 피해자가 아니라 유물론적 무신론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미 반동 세력’이나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매도되어 죽임을 당한 전형적인 현대 순교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순교자 시복 시성 본격 추진
1998년 현대 순교자 명단 작성은 한국교회 차원의 시복시성 추진과는 구별됩니다. 이는 보편교회가 대희년을 맞아 ‘신앙의 증인’을 기억하고자 하는 기념사업이었고, 한국교회는 이를 계기로 현대 순교자에 대한 교회법적 시복시성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주교회의는 2007년과 2009년 정기총회를 거쳐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시복 조사를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관할하여 통합 추진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와 함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한국 진출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7년, 덕원과 함흥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희생된 소속 수도자들의 시복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1998년의 현대 순교자 명단은 주교회의 통합 추진 과정에서 순교를 입증하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2012년 최종적으로 81명으로 크게 압축됐고, 이듬해 3월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라는 안건명이 승인됐으며, 2015년 8월 사진과 명단이 공개됐습니다.
특히 제주 신축교안 희생자 51명 중에서는 단 1명이 남고 모두 제외됐는데, 이는 신축교안이 복합적 요인이 얽힌 민란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희생자들의 사망 동기를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주교회의가 통합 추진하는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안건과 성 베네딕도회가 추진하는 ‘신상원 보니파시오 아빠스와 동료 37위’ 안건이 각각 정식 시복 추진되기 시작했고, 현재 한국교회 차원의 심사를 마치고, 교황청의 심사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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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말
1. 20190712_대전교구 80위 시복현장조사_01_이주연: 2019년 7월 12일,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재판진 및 대전교구 관계자들이 윤갑수(시몬) 묘 앞에서 칠촌조카 윤정근 씨(왼쪽에서 두 번째)의 증언을 듣고 있다.
2. 20220607_근현대 신앙의 증인 종료회기 봉인_박지순 (2): 조환길 대주교(맨 왼쪽)가 2022년 6월 7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 종료회기 문서를 봉인하고 있다.
3. 가톨릭신문_19981213_11면: 가톨릭신문 1998년 12월 13일자 11면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