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삶이 의료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돌봄을 받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제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의사의 역할과 의사에게 거는 기대도 커졌습니다.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한 합법화 요구는 의사에게 생명에 대한 처분까지 맡기려고 하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요구와 함께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의사를 환자의 원의를 단순하게 수행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은 의사의 그러한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해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결과적으로 현대 의료는 점점 상업화되어 가고 있고, 의료인들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제공자가 되며, 환자는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이 됩니다. 의사의 의지와 생각이 점점 더 그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에 의사라는 존재는 신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권한도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환자의 의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의사만이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환자의 선익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온정주의(paternalism)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가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일방적인 태도 역시 바람직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결코 동등하기가 어렵습니다.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의사는 환자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적인 상황을 그저 환자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에게 그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자는 환자 자신입니다. 그러나 환자는 아픈 사람입니다. 질병으로 인한 기력의 저하, 정신적인 명료함의 감소, 신체적 고통과 불안감, 관계의 단절 등이 환자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환자가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선택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의사는 여러 가지 역할을 요구받습니다. 즉, 환자의 상태와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 방법들에 대해서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환자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도록 환자의 능력을 최대한 회복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의 양심에 비추어 환자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결정을 내린다고 여겨질 때는 최대한 환자를 설득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설득은 강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득은 환자로 하여금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의사는 환자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환자의 가치관을 존중하면서도 그 선택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은 환자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면서 의사 역시 의사로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치료적 동맹’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맹은 양자가 자유롭게 맺는 계약입니다. 의사와 환자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의사와 환자는 모두 한 인격으로서 존중받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의료는 단순히 의학적인 지식을 적용하는 기회가 아니라,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며, 그 상호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의사와 환자 모두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글 _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