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깊은 펠리칸(컨), 주 예수님. 더러운 저를 주님의 피로 씻어 주소서.”
성시간에 열심히 참여하신 분이시라면 이 기도문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Adoro te devote)’의 한 구절입니다. 주요 기도문들을 보면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요. 도대체 펠리컨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기도문에, 그것도 예수님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등장하는 걸까요?
펠리컨은 우리말로 사다새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긴 부리 아래 주머니가 있는 모습이 특징인 새입니다. 주위에서 보는 새는 아니지만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다 보니 사다새가 친숙하게 느껴지는데요. 사실 구약시대까지 사다새는 그렇게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구약의 율법에서 사다새는 먹을 수 없는 정결하지 못한 동물로 분류됩니다.(레위 11:18, 신명 14:17) 그리고 스바니야서에서는 “사다새와 부엉이도 니네베 기둥 꼭대기에서 지내리라”(2,14)라며 폐허가 된 니네베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언급됐습니다. 사다새 자체가 나쁜 새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예수님을 상징할 법한 동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런 사다새의 이미지를 바꿀만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끼를 살리는 어미 사다새의 이야기인데요. 새끼들이 부모 사다새의 얼굴을 쪼면 부모는 그 새끼들을 죽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미 사다새는 사흘 동안 새끼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자신의 옆구리를 쪼아 피를 흘려, 그 피로 새끼들을 다시 살려낸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실제 사다새의 생태와는 다릅니다. 언제부터 전해졌는지 알 수 없는 이 이야기는 3~4세기경에 작성된 그리스도교 문헌인 「피지올로구스」에 등장하는데요. 이 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께 지은 죄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시편 주해」에서 사다새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고 신중하게 언급하면서도 “사실이라면 당신의 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분께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보라”고 예수님을 떠올리도록 초대했습니다. 사다새 이야기는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예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우화로써 사용된 것입니다.
이 우화는 많은 신자들에게 감명을 줬고, 특히 중세에 다양한 저술과 동물우화집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자기희생, 성체성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역시 이런 상징을 활용해 기도문을 만든 것입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교회 미술에도 사다새가 등장했고, 여러 문장에도 사다새의 상징이 사용됐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전통이 이어져 성체성사에 관해 논의했던 2005년 세계주교시노드 당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주교단에게 사다새가 각인된 반지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펠리컨, 사다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시기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기억해 봅니다.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