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 수준과 속도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이다. 전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모든 사물 영역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서 생산된 정보가 빅데이터로 저장되며, 물리적 생물학적인 아날로그 영역들이 디지털로 재생산되는 통합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인간의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창의력, 육체 노동력까지도 AI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와야 했고, 왜 멈추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긴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답은 공허하다. 경제학자인 슈마허(Ernst F. Schumacher)는 기술의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간을 포함하는 자연 세계의 모든 것에는 규모, 속도, 힘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배받고 있는 기술은 규모, 속도, 힘 측면에서 스스로 제한하는 법을 모른다. 다시 말해 자기 균형, 자기 조절, 자기 정화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자연환경을 통해 수많은 거부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슈마허가 말하고자 했던 거부반응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 가지 위기에 해당하는데, 첫째, 인간 본성이 기계에 종속되거나 침해되는 문제. 둘째, 환경오염의 문제. 셋째,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의 남용과 고갈의 문제이다. 이러한 위기는 슈마허의 주장이 있었던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하고 있다.
팽창일로의 과학기술과 이를 통해 발달해온 자본주의는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자기제어 기능이 없으므로 진지한 성찰의 과정이 없다면 해결이 안 될 지경이다. 과학기술에 인문학적인 성찰이 가미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연의 순환 원리와 생태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과학기술의 작동 원칙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 적합한 기술 그것이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다. 적정기술은 1960년대 중반 슈마허 박사가 주창한 이래 전 세계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당시에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적정기술을 보급하였다. 저렴하고 어렵지 않은 과학 원리와 기술로 일자리를 늘리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
그렇지만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심화시킨 것은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이다. 따라서 선진국에서의 적정기술은 다른 맥락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자연 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화학비료나 제초제 같은 농약을 쓰지 않는 농업으로 식량을 생산하며, 플라스틱 제품을 멀리한다. 자연으로부터 물질을 얻고 되돌린다는 것의 중대함을 깨달아 순환의 원리에 맞는 방식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져야 하며, 쓰레기로 매립되거나 태워지는 일을 줄여야 한다.
자연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인정하고, 생태계를 존중하며 보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과 생명체는 디지털 기술로 창조되거나 대체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디지털 기술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려는 과학기술이 있다면 그것이 곧 적정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적정기술의 사례가 있는지 다음 칼럼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글 _ 강신호 스테파노(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