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를 보전하는 일은 거창한 구호보다 개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모이면 생각지도 못했던 큰 결실을 볼 수 있다.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2007년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 그리고 이를 극복한 자원봉사자와 태안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태안 바다가 검게 물들었다
서해안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로 불린다. 8월 20일 찾은 태안군 소원면 소근진 갯벌에는 칠게, 농게 등 갯벌 생물들이 우글거렸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만리포해수욕장에는 늦여름에도 관광객들이 해수욕이나 서핑을 즐겼다. 모래사장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도 보였다.
20여 년 전 이 일대는 온통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였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앞 해역에서 유조선과 크레인선이 충돌해 약 1만900톤의 기름이 유출되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만리포해수욕장에 기름띠가 몰려와 해변을 덮쳤다. 모래사장, 갯벌, 갯바위가 모두 시커멓게 물들었다.
당시 사목회장이었던 대전교구 태안본당 김용순(안드레아) 씨는 “사고가 난 후 첫 주일에 신부님, 수녀님과 함께 만리포 바다에 나갔는데, 새까만 원유가 바닷가까지 치고 올라왔고,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회상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거대한 기름띠는 태안 해안 거의 전 지역을 덮쳤다. 해안선 375km, 섬 101개가 오염되는 피해를 입었다. 타르 덩어리가 전남·전북까지 흘러가며 근해 어장 등 무려 3만4703.5헥타르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봤다.
생태계도 붕괴했다. 철새들은 기름 범벅이 돼 옴짝달싹 못 했고, 조개, 게, 망둥이 등 바다와 갯벌 생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굴과 김 양식장이 모두 마비되는 등 태안군 전체 어장 면적의 63 이상이 타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바다의 자정 작용으로 피해 지역이 완전히 복구되는 데 최소 2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학생, 직장인, 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태안으로 발걸음을 이어갔다. 죽어가는 갯벌과 해변을 살리고, 고통받는 주민들을 돕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자원봉사자 123만 명… 태안본당도 발 벗고 나섰다
“갯벌에 나갔는데 글쎄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진흙이 눌리면서 게 구멍에서 시커먼 기름이 쑥 하고 올라오는 거야. 바닷물은 빠졌는데 구멍 속에 기름이 남아 있던 거지”(윤길상 대건 안드레아·대전교구 태안본당)
태안본당도 유류 사고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신자 중 300가구 이상이 직간접적 피해를 봤지만, 그렇다고 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본당은 수습본부를 설치하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신자 자원봉사자들에게 군청 등에서 보급받은 방제복을 배부하는가 하면, 방제 작업이 필요한 지역으로 봉사자들을 안내했다. 봉사자들이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도록 하루에 1700그릇이 넘는 떡국을 끓여 대접했다. 당시 수습본부장 손승만(로마노) 씨는 “새벽마다 40대가 넘는 버스가 성당으로 몰려왔다”며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성직자와 수도자를 비롯해 태안과는 인연이 없던 전국 각 교구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섰다. 봉사자들은 한겨울 추위와 기름의 악취를 견뎌야 했다. 사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만리포해수욕장과 피해가 컸던 소근진 갯벌·방파제, 의항해수욕장 등에서는 봉사자들이 갯바위를 닦고 해변의 기름을 퍼냈다. 제주도에서 휴가를 내고 온 젊은 직장인 봉사자도 있었다. 본당 신자들은 먼 길 달려온 봉사자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집을 숙소로 흔쾌히 내어줬다.
태안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123만 명에 달했다.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모여 태안 해변은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윤길상 씨는 “사고 후 2~3년이 지나니 갯벌에 조개가 보이기 시작했고,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에서도 더 이상 기름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며 “정말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방제 작업을 비롯해 유류 사고를 극복하며 정부와 지자체, 민간단체와 개인들이 남긴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록물’은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역목록에 등재됐다.

회복된 생태계, 개개인이 직접 실천한 피조물 보호
태안 해안이 원래대로 회복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태안본당 최병석(요한 사도) 씨는 “외출할 때마다 머리가 띵할 정도의 악취를 견뎌야 했다”고 회상했다. 또 유류 사고 후 관광객이 다시 태안을 찾기까지도 수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태안 주민들의 노력은 생태계의 복원을 앞당겼다. 2014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서해안 잔존유류 모니터링 결과 심각한 수준의 오염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9년 만인 2016년에는 사라졌던 토종 돌고래 상괭이가 태안 앞바다에 돌아왔다. 깨끗한 바다에서만 산다는 상괭이의 귀환은 서해안 생태계의 회복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년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했다. 교황은 “이날은 개인과 공동체가 창조계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가해진 죄악에 대한 용서를 구할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안의 경험은 피조물 보호가 거창한 구호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부주의와 무관심이 생태계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것처럼, 반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실천은 훼손된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묻은 돌과 모래를 직접 닦아낸 태안의 모습은 이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태안본당은 유류 사고와 그 극복 과정, 지역주민과 봉사자들의 연대를 기억하며 2025년 봉헌한 성당 십자가의 길 제6처에 그 의미를 담았다.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리는 청동 조형물 아래 기름을 닦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본당 주임 곽승룡(비오) 신부는 “자신이 사는 지역이 아님에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달려와 준 봉사자들의 모습은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복음적 연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