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시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굽비오(Gubbio)는 해발 500m의 인지노(Ingino)산 자락에 자리한 도시입니다. 굽비오는 기원전 3세기부터 역사를 이어 왔으며, 중세에는 자치도시(Libero comune)로 다시 태어나 12세기부터 14세기 사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를 상징하듯 도시 중심에는 오르비에토의 안젤로가 1332년부터 1349년까지 건설한 웅장한 콘솔리 궁(Palazzo dei Consoli)이 우뚝 서 있습니다. 이 궁은 굽비오 최고 집정관의 집무실이 있던 관저이자, 도시의 주요 법적 판결이 내려지던 법정이었습니다. 또한 시민 회의가 열리던 시민 자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굽비오가 전성기를 누리던 13세기는 무엇보다 굽비오와 프란치스코가 깊이 만난 시기였습니다. 아시시가 성인이 태어나 새로운 소명을 품고 세상의 옷을 벗어 버린 첫 번째 고향이라면, 굽비오는 그 소명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하느님의 옷을 입은 두 번째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06년 아시시 재판장에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 주며 회개의 삶을 시작한 프란치스코는 곧바로 굽비오로 향했습니다. 그는 가는 길에 강도의 습격을 받아 매를 맞고 옷까지 빼앗긴 채 눈 쌓인 도랑에 던져졌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굽비오에 도착한 프란치스코는 젊은 시절 친구였던 부유한 상인 자코모 스파다롱가에게 피난처를 구했습니다.

스파다롱가 가족은 프란치스코를 자신들의 상점 창고에 머물게 하며 극진히 돌봤습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으며, 오래도록 기억될 상징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거칠고, 염색하지 않은 회색 천으로 만든 옷을 허리끈으로 묶어 선물한 것입니다. 이 옷은 훗날 프란치스코회 수도복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13세기 중반, ‘백 개의 독방’이라 불리는 수도원과 함께 프란치스코의 이름으로 봉헌된 고딕 양식의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성당 내부에서는 두 곳의 중요한 장소를 볼 수 있습니다. 중앙 제대 오른편에는 프란치스코의 친구 스파다롱가가 프란치스코에게 첫 수도복을 입혔다고 전해지는 옛 창고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중앙 제대 왼편 성체 소성당에는 움브리아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후기 고딕 양식 회화 연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타비아노 넬리의 프레스코화 <동정 마리아의 생애>(1408~1413)가 그려져 있습니다.

정경이 아닌 외경에 전해지는 동정 마리아의 생애가 시간순으로 자세히 그려져 있어, 중세 사람들이 마리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공경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그림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더 이상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 아니라 굽비오에서 모든 사람의 형제가 된 가난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듯, 굽비오는 포기에서 재탄생으로 나아가는 근본적인 전환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이곳은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묻게 합니다.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나는 어떤 물질적·정신적 짐을 벗어 던져야 할까?”
도시 외곽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공원 가운데 작지만 정겨운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나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la Vittorina)을 만나게 됩니다. 1220년경 굽비오는 거대하고 사나운 늑대 때문에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 늑대는 동물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해쳤습니다. 주민들은 무기를 들고 다녀야 했고, 도시는 공포에 마비되었습니다.
이에 연민을 느낀 프란치스코는 늑대를 만나기 위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성벽 밖으로 나갔습니다. 늑대가 그에게 달려들자, 성인은 십자 성호를 긋고 늑대를 “늑대 형제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매일 먹이를 제공할 테니, 다시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고 제안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늑대는 순종하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 프란치스코의 손에 앞발을 올려놓았습니다.
비토리나 성당은 보편적 화해의 장소입니다. 포악했던 늑대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폭력과 불의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 갈등까지도 가리킵니다. 프란치스코는 세상의 두려움 앞에서 도망가거나 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감과 경청을 통해 화해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겸손으로 각자의 삶에서 마주하는 ‘늑대’와 화해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했듯, 우리 역시 외적이든 내적이든 삶 안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을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비토리나 성당에서 1km 정도 떨어진 도시 중심의 사벨리길에는 평화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Chiesa di San Francesco della Pace)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도시 사람들과 늑대 사이의 깊은 유대감과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곳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프란치스코가 비토리나 성당에서 길들인 늑대는 2년 동안 굽비오의 집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늙어 죽었습니다. 평화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바로 그 늑대가 죽은 동굴 위에 세워졌습니다. 성당 내부에는 현재 제단으로 사용되는 돌이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돌 위에서 굽비오 주민들에게 설교하고, 주민들과 늑대 사이의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제단을 받치고 있는 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굽비오 외곽에서 사람과 짐승을 해치던 늑대를 성스러운 십자가로 굴복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뒤, 그 늑대를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이 돌 위에서 설교하며 늑대의 발을 통해 약속을 받았습니다. 늑대는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았고, 도시에서 먹이를 제공받으며 근처 동굴에서 사람들과 함께 순종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성당 지하에는 늑대의 무덤을 덮을 때 사용한 대리석 뚜껑이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그 뚜껑에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십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른편의 작은 입구는 성 프란치스코를 만난 뒤 늑대가 약 2년 동안 살았던 동굴로 이어집니다. 이 성당은 프란치스코의 평화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정의와 나눔에 기반한 지속적인 사회적 계약임을 일깨워 줍니다.
굽비오를 떠나며 다음 기도문이 떠오릅니다.
‘굽비오에서 당신의 종 프란치스코에게 존엄의 옷을 입혀 주셨으니, 저에게도 새 내면의 옷을 입혀 주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세상의 상처 입은 이들에게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환대의 기술을 가르쳐 주소서. 두려움과 편견의 벽을 넘어 제 삶의 늑대들을 마주할 수 있는 복음적인 용기를 주소서. 제 삶을 화해와 나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아멘.’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