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습할 때마다 긴장한다.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그의 음악이 지닌 맑음과 투명함, 그 안에서 순간순간 반짝이는 빛을 온전히 드러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를 연주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꽃을 묘사한다 해도 눈앞에 핀 꽃의 아름다움을 다 담아낼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겉으로 들으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무척 자연스럽다. 선율은 막힘없이 흐르고 화성은 투명하며 음악은 언제나 우아하다. 그래서 쉽게 연주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휘자의 자리에서 악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금만 힘이 과해도 그 투명함은 무거워지고, 표현을 지나치게 덧붙이면 모차르트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이것이 모차르트 음악의 어려움이다.
그의 성음악 역시 그렇다. 모차르트는 미사곡과 모테트, <레퀴엠>을 비롯해 많은 성음악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바흐처럼 분명한 신앙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고, 브루크너처럼 자신의 신앙과 삶을 장대한 음악적 고백으로 펼쳐 보이지도 않는다. 때로는 그의 세속음악과 성음악 사이의 경계마저 희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모차르트의 성음악은 과연 신앙을 표현하고 있는가.
신학자 한스 큉은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그 답을 ‘초월성’에서 찾는다. 모차르트의 삶만을 놓고 본다면 그를 전형적인 경건한 음악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는 권위에 반항했고, 귀족사회를 풍자했으며, 익살과 장난을 즐겼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문화와 전례 속에서 성장했고, 죽음을 앞둔 마지막 시기에 <레퀴엠>을 붙들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음악이 들려주는 세계다. 아름다운 선율과 투명한 화성,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품어내는 표현 안에는 모차르트만의 향기가 있다. 솔직하면서도 겸손하고, 우아하면서도 생기 있으며, 깊은 슬픔 속에서도 어느 순간 고요한 기쁨이 비친다.
지휘를 하다 보면 바로 그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음악이 억지 없이 흐르기 시작하면, 악보에 적힌 음표 너머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즐거움과는 조금 다르다. 잠시 현실의 무게를 벗어나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순간이다.
아마 이것이 한스 큉이 말한 모차르트 음악의 ‘초월성’일 것이다. 음악이 신성을 설명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향해 사람을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지휘할 때마다 다시 긴장한다. 그의 음악에 무엇인가를 더하려 하기보다 이미 그 안에 존재하는 맑음과 빛을 가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차르트의 음악 앞에서 연주자가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일은 그 신비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조용히 길을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_이철수 베네딕토(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아르스노바 합창단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