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창기 수원교구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았던 사제 모임 ‘대건회’ 회원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교구는 9월 10일 교구청에서 ‘대건회 감사식’을 열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구의 기틀을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힘을 보탠 대건회 사제들의 노고를 되새겼다. 이날 감사식은 대건회 사제들이 교구를 위해 마련한 약 25억 원 가치의 부동산을 봉헌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대건회 회원 최윤환(암브로시오) 몬시뇰과 이정운(베드로) 몬시뇰, 송병수(시몬)·최재용(바르톨로메오)·김학렬(요한 사도) 신부가 참석해 교구 초창기를 함께 일궈 온 시간을 되돌아봤다.
대건회는 교구 설정 초기인 1967년 사제 14명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1963년 설정 당시 교구의 교세는 24개 본당, 신자 4만2548명, 사제 28명에 불과했다. 사목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서 사제들은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교구의 토대를 다져 나갔다.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인사말에서 “대건회는 우리 교구가 설정된 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사제들의 모임”이라며 “가난하고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교구를 위해 힘을 모으고자 신부님들이 뜻을 함께한 것이 대건회가 생겨난 이유였다”고 말했다.
당시 대건회 사제들은 농촌 공소 활성화와 도시·농촌 간 협력 사목 방안을 모색하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청소년·청년 사목의 방향을 고민했다. 또한 신학생 양성과 사제 교육 등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뜻은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졌다. 회원들은 회비를 모아 1971년 2월 11일 당시 경기도 용인군 유방리의 토지 989평을 79만1200원에 구입했다. 당시 쌀 80㎏ 한 가마 가격이 약 900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큰 금액이었다.
사제들은 이 재산을 바탕으로 신학생 양성과 후원을 돕고, 사제품을 받은 뒤에도 학업을 계속하려는 사제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며 교구의 미래를 준비했다. 1991년 대건회가 마지막 회의를 가진 뒤에도 이러한 뜻은 이어졌다.
이 주교는 “선배 사제들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의 미래를 위해 열정을 다해 살아오셨다”며 “그 희생과 사랑이 오늘의 교구를 이루는 소중한 밑거름이 됐음을 기억하고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대건회에 담긴 교구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그 좋은 본보기가 후배 사제들과 신자들에게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재용 신부는 답사를 통해 “교구가 시작될 무렵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신자들은 순교 정신을 이어받아 신심이 깊었고 사제들이 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며 “신부들도 함께 뭉쳐 훗날 후배들을 위해 교구가 힘차게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고자 애썼다”고 말했다.
이어 “허리가 굽고 기운 없어 보이는 원로 사제와 성당의 수많은 어르신을 볼 때마다 그분들이 교구에 남긴 흔적을 소중하고 귀한 훈장으로 여기고 자랑스러워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