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은 병인박해가 시작된 지 160년이 되는 해다. 오늘날 절두산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순교성지로 자리하고 있지만 60여 년 전 모습은 사뭇 달랐다. 가톨릭신문의 옛 지면을 펼치면 허허벌판 순교 터가 성당과 박물관을 갖추고 성지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1964년 9월 13일자 ‘순교성지를 찾아서-절두산’은 당시 절두산을 “잡초만 우거진 한강 변 절벽 위에 ‘가톨릭순교성지’의 기념탑이 홀로 서 있다”고 전했다. 순교자현양회가 대지를 마련하고 1962년 기념탑을 세웠지만 지금과 같은 성지의 모습은 아직 없었다.
병인박해 100주년을 앞두고 변화가 시작됐다. 1965년 10월 3일자에는 병인순교 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회비 모금을 위해 발행한 용지 2000매가 모두 배포됐다는 소식이 실렸다. 이어 1966년 1월 16일자 ‘절두산에 순교기념성당 착공’은 1965년 12월 31일 열린 기공식과 복자성당·기념관 건립 계획을 보도했다.
병인순교 백주년 기념사업회는 총 공사비 3000만 원을 목표로 모금에 나섰고, 당시까지 모인 돈은 150여만 원이었다. 3000만 원은 소비자물가 상승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현재 약 12억4000만 원에 해당한다.
성당 건립에는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였다. 1967년 1월 22일자 ‘사형수의 성금 복자성당 기금으로’에는 서울교도소 사형수 조일용 씨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는 고향 부모에게 보내려던 영치금 1000원 전액을 1월 11일 절두산 순교기념성당 건립비로 내놓았다. 안타깝게도 조 씨는 이틀 뒤 형 집행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문은 서울대교구 주교관 재경부장 경갑룡(요셉) 신부가 고인을 위해 연미사를 봉헌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그해 가을 마침내 성당과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1967년 10월 29일자 지면은 절두산 순교자기념성당과 복자기념박물관이 완공돼 10월 21일 윤공희(빅토리노) 주교 주례로 축복식이 거행됐다고 전했다. 불과 3년 전 기념탑만 홀로 서 있던 곳에 성당과 박물관이 들어선 것이다.
성지가 조성되자 순례자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1968년 10월 6일자에는 도림동본당 신자 600명이 9월 29일 성당에서 절두산까지 20리 길을 걸어 순례한 소식이 실렸다. 1968년 10월 3일에는 시복경축중앙위원회와 가톨릭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백일장과 사생대회가 전국 1167명의 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1968년 10월 6일자 ‘순교정신 현양사업 어제와 오늘’ 좌담회에서는 절두산 기념관에 보관할 교회 유물을 더 수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어 1970년 8월 23일자는 순교자 유품을 모으는 운동을 소개했다. 이 지면은 2017년 절두산순교성지 축성·봉헌 50주년 특별전에도 전시됐다.
1984년 5월 3일 한국을 찾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김포공항 환영 행사를 마친 뒤 첫 방문지로 절두산을 찾았다. 가톨릭신문은 교황이 성해실에서 순교자들의 무덤을 둘러보고 기도와 분향을 한 뒤 참석자들과 한국어로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고 전했다.
이후 절두산 순교성지의 정비와 변화도 지면에 꾸준히 기록됐다. 1997년에는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가톨릭신문은 2000년 9월 3일자에 순교자 기념광장과 교회사 유물공원 등을 조성하는 ‘절두산 순교 성지 종합발전 계획’을 담았다. 2009년 9월 13일자는 전시공간을 새롭게 단장해 다시 문을 연 박물관의 모습을 전했다.
병인박해 150주년이던 2016년에는 특별전 ‘병인년 땅의 기억’을 통해 병인박해와 절두산의 역사를 다시 조명했다. 그리고 10년 뒤인 올해에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특별전 ‘양화나루와 잠두봉 이야기’(2026년 8월 16일자)를 소개했다. 1964년 가톨릭시보가 ‘잡초만 우거진’ 곳으로 소개했던 절두산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그렇게 신문 지면에 차곡차곡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