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국가는 아동과 부모의 인종, 언어, 국적 등 지위와 무관하게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아동과 관련한 모든 결정에서 ‘아동 최선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 권리는 물론 존재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있다. 이른바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다.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아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처한 현실과 권리 보장을 위한 과제 그리고 교회의 역할을 살펴본다.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는 아이들
한국에서 태어난 베트남 아동 A군은 감기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폐렴으로 악화됐다. 치료를 위해 해마다 3~4회 병원에 입원했고, 의료비는 1000만 원 넘게 나왔다. 미등록 이주민 가정은 체류 자격이 없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소한 질병조차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다 보니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외래 진료와 입원, 재활 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해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A군 사례처럼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의료는 물론 교육·문화·신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존재하지 않는 아이’ 취급을 받는다.
국가데이터처와 성평등가족부가 5월 21일 발표한 「2026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초중등 다문화 학생은 20만 2208명. 그러나 이 통계는 재학 중인 국제결혼가정 자녀와 외국인가정 자녀가 대상으로, 학교 밖 아동과 미등록 이주 아동 등 출생이 공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아동은 제외됐다.
통계에서 제외된 이유는 말 그대로 어느 지역에 몇 명의 미등록 아동들이 살고 있는지 국가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있지만 없는 아이들’, ‘그림자’라는 오명이 따라붙기도 한다.
이주아동 권리 보장의 첫걸음은 이주아동을 ‘발견’하는 것
이주아동을 복지 사각지대에서 구해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주아동들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출발점은 아이들의 존재를 알아내는 것이다. 공적확인제도나 국가 차원의 출생등록제, 공적확인제도 등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8월 27일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입법부작위 사건’에서 국회가 보편적 출생등록제와 관련한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는 아동이 내국인인지, 아니면 외국인인지 여부에 따라 그 보장 여부를 달리하여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며 “아동은 자신이 태어나는 장소나 나라,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아동이 태어난 즉시 그 출생한 지역의 관할 국가가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기록해 주는 것은 인간으로서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미 이런 대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들도 있다. 경기도는 올해 2월부터 ‘출생미등록 외국인아동 공적확인제도’를 도입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와 세이브더칠드런 등 단체들과 협력해 6월 말 기준 10개 시군에서 144건의 아동확인증을 발급했다. 이는 출생신고와는 무관해 국적이나 체류 자격을 취득할 수는 없지만, 아이의 존재를 행정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의료·보호·지원 체계와 연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발점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는 경기도에만 한정된 제도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장 유상혁(요한 세례자) 신부는 “이주아동의 발견과 확인, 연계라는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지역에 따른 권리 격차와 출생등록 공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사회 변화에 발맞춰 교회도 구체적인 준비 필요
경기도의 공적확인제도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등은 이주아동을 미등록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관심하게 여기던 사회적 분위기가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교회도 이주사목을 담당하는 기관뿐만 아니라 본당 공동체 차원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을 발굴하고 관계 기관에 연결해 주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교회는 줄곧 이주민과 난민이라는 ‘이방인’들에 대한 환대를 강조해 왔다. 특히 레오 14세 교황은 2026년 제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에서 “모든 어린이, 모든 인간은 무한한 존엄성을 드러내고, 모든 이주아동 앞에서 우리는 인류애와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부름받는다”며 “이 임무를 그저 고유한 은사를 지닌 기관이나 단체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즉 이주아동에 대한 환대는 교회의 특정 기관뿐만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이란 말이다.
유상혁 신부는 “레오 14세 교황은 ‘이주 관리’에서 ‘인권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보호’로 관점을 옮기고, 이주아동에 대한 환대 또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안정적인 사목 관행으로 바꾸며 아동을 교회 가족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국 각 교구 이주사목위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의료비 지원사업 ‘희망 날개’를 펼치고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복지시설과 같은 ‘교회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등록 이주민 가정들을 알아내고, 이들에게 의료기관을 연결해 주거나 출산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일부 기관 차원의 노력을 넘어 본당과 교구 공동체가 함께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 가정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유 신부는 “교회 공동체의 역할은 권리의 공백 속에서 이주아동을 즉시 보호하고, 공공제도로 연결하며 증언하는 데 있다”며 “본당과 이주공동체, 학교, 병원 간 연락망을 만들어 이주아동의 의료 공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본당에 이주민 돌봄 봉사자를 두고 이주민 가정을 발굴하거나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제도를 안내하고, 필요한 경우 교구 이주사목위원회나 의료기관 등에 연결해 주는 일은 본당 차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교구 차원에서는 보편적 출생등록제와 같이 이주민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마련과 입법을 촉구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