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파티마 마을의 세 목동에게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그 뒤로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마다 그 목동에게 나타나며 자신을 ‘묵주기도의 성모’라고 이야기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회개와 기도를 원하셨고, 그렇게 하면 전쟁이 멈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회개하지 않고 나쁘게 살아간다면 비오 11세 교황 시기에 다시 전 세계는 전쟁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10월 태양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정말 거짓말처럼 세계대전은 다음 해인 1918년 멈추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분이 알고 있는 ‘파티마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세계대전이 멈추자,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성모님의 예언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인지 1939년 전 세계는 다시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게 됩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1917년 발현하셨던 성모님께서는 6번의 발현을 통해 우리에게 지속해서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강조하시며 회개하고 티 없으신 성심께 세계를 봉헌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 지구촌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을 비롯하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수단, 미얀마, 아프가니스탄의 내전, 시리아와 예멘의 지속적인 군사 충돌 등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둘로 갈라져 싸우지는 않지만, 세계 전체가 전쟁 중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랜 시간 지속하는 내전도 많아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인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성모님의 말씀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쟁이 싫다고 하면서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올해 청년 도보 성지순례도 끝이 났습니다. 지난 7월 4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장기 도보 성지순례에서는 216.4km, 36만2208보를 걸으며 묵주기도 3만3858단을 바쳤습니다.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단기 도보 성지순례에서는 82.3km, 13만3027보를 걸으며 묵주기도 7279단을 봉헌하였습니다. 많은 청년이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평화는 정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1985년 한국을 찾은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판문점에서 북녘땅을 향해 기도하며 우리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이후 역대 교황님들도 지속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침묵의 교회인 북녘 교회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면 이미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평화를 지향으로 한 기도를 게을리하는지도 모릅니다. 10월은 묵주 기도 성월입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다 같이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서 하루빨리 평화로운 이 땅에서 우리가 느끼고 있는 지금의 익숙함을 지우는 날이 다가오기를 저도 기도합니다.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