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하고 있다. 품종 개량, 화학 비료, 농약과 기계화 등 농업기술의 진보 덕분이다. 하지만 ‘공짜점심 따위란 없다’라는 선지자의 지적은 이럴 때 필요한 말이다. 오염을 일으켰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화석연료와 화학 물질로 생태계와 토지는 회복이 불가할 정도로 황폐화했고 인류는 기후 변화, 사막화, 환경 오염이라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관행 농업을 벗어나 자연생태계의 순환 원리에 부응하는 농사법과 새로운 삶의 문화를 창출하려는 개념이 바로 ‘퍼머컬처(Permaculture)’다. 흔히 ‘지속가능한 농업’ 또는 ‘지속가능한 문화’로 번역한다. 이 개념은 1970년대 호주의 빌 몰리슨(Bill Mollison)과 데이비드 홈그렌(David Holmgren)이 창안하고 구체화했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30억 년 이상 생명체가 번성해 왔고, 토착민들이 수천 년 동안 자연환경과 비교적 조화롭게 살아온 것에 주목했다. 지금처럼 자연을 착취하거나 학대하지 않고도 토착민들이 자연과 평화롭게 공존한 것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퍼머컬처는 전통적 지혜와 과학적 지식을 결합하되 자연 생태계의 원리를 벗어나지 않게 설계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농업이 가능하다고 본다. 가장 바람직한 농업 설계는 곧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단지 농업을 통한 식량 생산뿐만 아니라 동·식물, 에너지, 건축물, 물, 통신과 같은 사회 기반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퍼머컬처가 단지 유기농업과 같이, 농사 기술이나 식량 생산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아무리 관행 농업을 개선한다 하더라도, 사회 자체가 지속불가능하다면 지구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할 것이다.
따라서 퍼머컬처의 원칙은 자연의 지혜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이를테면 유기농업, 재활용, 생태건축, 재생에너지 등 생태적인 삶에 필요한 지식과 도구들을 언제 사용할지 결정하고 조직할 수 있게 한다. 어느 곳에 어떤 기술을 써야 할지를 정의하는 것이 퍼머컬처의 방식이다. 그래서 퍼머컬처는 광범위한 기술들을 연계하여 응용하기 위한 디자인 접근법이라 불리는 것이 정확하다.
퍼머컬처는 세 가지 핵심 윤리와 12개의 원칙으로 정리된다. 퍼머컬처의 비전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세 가지 핵심 윤리를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구살림(Earthcare)으로 토양, 숲, 물, 동물 등 모든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순환 유지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존중한다. 둘째, 사람살림(Peoplecare)으로 개인이 건강과 자립적인 삶을 위해 신체적·정신적 필요를 채우며 서로 돕는다. 셋째, 소비를 자제하고 남는 자원과 잉여 생산물을 지구와 이웃에게 다시 나눠 성장의 한계를 설정한다.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서 퍼머컬처의 개념을 전파하고 학습하며 실천하는 공동체들을 만날 수 있다.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를 운영하는 교육활동가나 공동체들이 지역 곳곳에 퍼져 있고,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도 2023년 결성됐다. 내 밭이나 농장을 어떻게 하면 생태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까를, 퍼머컬처 운동을 통해 만나고 접목하는 것은 더 늦출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글 _ 강신호 스테파노(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