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계몽주의는 외적인 권위가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 능력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성의 한계를 대면하면서 낭만주의는 감정을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영향 아래 현대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1768~1834)와 현대 종교심리학의 선구자인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교회의 권위나 엄격한 교리보다 개인의 내적 체험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각 개인이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신앙이 전통과 제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주체적 양심, 자유, 그리고 삶의 구체적 경험 안에서 드러나는 측면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 경험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중요성을 부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무인도에서 표류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대니얼 드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는 최초의 영국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까지 연극과 영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사랑받고 있는 이 작품은 인간의 이성, 개인주의, 문명, 식민주의, 자본주의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인도에서 홀로 생존한다는 모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소설의 전반부는 주인공의 종교적 회심이 핵심 내용이다. 문명과 공동체에서 고립된 상황에서 죄에 대한 인식, 회심 그리고 섭리를 경험하는 개인 차원의 그리스도교 영성을 그리고 있다.
표류하다 섬에 도착한 크루소, 개인적 고통 극복하며 신앙생활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 이뤘지만 공동체로부터 철저하게 고립
불평등한 권력·소유에 얽매여 신앙 사유화하는 맹점 드러내
소설의 시작에서 주인공은 그리스도교적 교육, 언어, 문화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의 부모님은 “일찍부터 내 마음속에 하느님에 대한 경건한 경외심과 나의 의무에 대한 의식, 그리고 내 존재의 본성과 목적이 나에게 요구하는 바에 대한 깨달음을 심어 주기 위해 결코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내면화되지 못하고, 교육받고 물려받은 외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비록 그리스도교적 언어를 사용하고 기도, 의무, 하느님의 심판에 의해 형성된 도덕적 세계에 살고 있지만, 크루소는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였다.
신앙에 대한 주인공의 개인적 경험은 아버지의 뜻에 대한 거역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항상 ‘중간 계층의 삶’을 살아가도록 충고한다. 이 중간 신분의 생활이 자신의 분수에 맞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바다로 모험을 떠나버린다.
바다는 문명과 대비되는 자연의 상태이다. 또한 주인공은 배가 난파되어 표류하다가 도착한 무인도를 문명과 사회의 보호를 벗어난 “원초적 자연 상태”라고 묘사한다. 존 로크가 말한 ‘백지상태(tabula rasa)’에 놓이게 된 것이다. 크루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개인이 문명과 떨어져서, 경험한 삶이다.
이러한 자연의 상태에서 크루소가 신앙을 내면화할 수 있었던 동기는 불안과 고통의 경험이다. 바다에서 처음으로 거친 폭풍우를 겪게 되었을 때,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것과 부모의 눈물을 떠올리며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섬에 고립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심한 발열과 오한을 동반한 열병에 걸려 거의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다. 그렇게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꿈을 꾼다. 불꽃 속의 한 남자가 검은 구름으로부터 내려와 창을 겨누며, “네가 이 모든 일을 겪고도 회개하지 않았으니 이제 죽으리라”고 호통을 친다.
마침내 자신의 과거를 신앙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부모에 대한 불순종을 자신의 ‘어리석음’이며 ‘원죄’로 인식한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며, 삶에서 처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제가 큰 환난 중에 있나이다.” 그리고 내면 안에 오래 잠들어 있던 ‘양심’이 깨어나며,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크루소가 겪는 개인적 고통은 의미 없는 아픔이 아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이기적 자유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고 의존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고통 그 자체가 선은 아니지만, 인간을 참 진리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소설이 크루소와 하느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한다고 해서 공동체적 그리스도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공동체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상호 관계성을 유지한다. 추상적인 신학적 교리는 개인의 회심과 고통 등의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구체적인 의미를 제시할 수 있다. 동시에 개인의 체험은 교회 공동체의 전통에 의해 형성되고 검증되며, 지속된다.
이런 문맥에서 개인적 체험에 기반을 둔 주인공의 그리스도교 신앙은 진실되지만 불안정하다. 교회 공동체와 신자들과의 관계가 제공하는 공동체적 지지, 안정성, 교정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해석과 두려움과 고립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크루소의 신앙은 자신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개인적인 필요가 주된 목적이 될 수 있는 취약성이 있다. 회개, 기도, 섭리에 대한 해석은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그의 영성은 공동체 안에서 봉사와 책임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자기 관리의 영성으로 퇴화될 가능성이 있다. 관계성이 결여된 자립의 개인주의 위험성이 있다.
고립된 신앙은 일상의 사건들을 초자연적인 상징으로 해석하게 된다. 회심을 통한 내면의 평화와 무인도 환경에 대한 적응과 더불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긴장감 넘치는 순간으로 꼽히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순간 “번개 맞은” 것처럼 얼어붙어 버렸다. 그 발자국은 ‘악마’ 혹은 ‘매우 위험한 야만인’일 거라 상상하며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의 신앙은 섭리에 대한 신뢰와 형벌에 대한 두려움 사이를 오고 간다. 경험을 함께 공유할 공동체가 없는 그의 종교적 상상력은 불안이라는 역동성에 끌려다닌다.
발자국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고립된 삶에서 사회적 관계로 전환되는 중요한 순간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경각심이다. 익숙하고 통제 가능한 개인적 경험의 안전지대는 순식간에 예측 불가능한 공간으로 변한다. 하느님의 섭리를 의심하지만, 마침내 마음을 잡고 기도와 성경을 통해 평정을 찾는다. 그리고 야만인들의 공격에 대비하는 등, 사회적 존재로서 정체성을 찾아간다.
비록 나중에 프라이데이와 그의 아버지, 스페인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지만, 여전히 개인적 경험 중심의 신앙은 한계를 드러낸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영토 전역에서 양심의 자유를 허용했다.”
크루소의 종교적 회심은 타인에 대한 지배와 소유, 식민지적 의식과 공존한다. 프라이데이를 개종시키지만, 마치 그리스도교를 자신의 소유처럼 다른 이에게 전수한다. 신앙의 개인적 경험에 머무는 주인공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고 성실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등한 방식으로 소유권과 권력을 행사한다.

글 _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