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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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라 베르나(La Verna), 하느님을 만난 거룩한 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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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상에서 가장 머물고 싶었던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아마도 성인에게 세상의 중요한 장소는 두 군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곳은 사람들을 만나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장소이고, 다른 한 곳은 하느님을 만나 고요한 침묵 속에서 말씀을 듣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계명이자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

성인에게 이 장소는 사람들과,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는 곳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설교라는 방법으로 사랑을 주었고 구걸이라는 방법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은둔소에서는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스스로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베네딕도 수도원처럼 사람을 피해 산속에 머무는 혼자만의 은둔 생활이 아니라 마을로부터 너무 멀지도 않은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장소를 선택하여 머물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성인의 은둔소 중 가장 높은 해발 1120m에 있는 성지 ‘라 베르나(La Verna)’는 언뜻 생각하면 베네딕도 수도원처럼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람들이 살던 마을 ‘키우지 델라 베르나(Chiusi della Verna)’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1213년 몬테펠트로의 산 레오 성에서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키우지의 영주 오를란도 백작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라 베르나 산을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라 베르나 산이 매우 험준하고 거룩한 곳이라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고행하거나 은둔 생활을 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이 산을 내주고자 했습니다.

소유를 원치 않던 프란치스코는 백작의 말처럼 속죄와 기도 생활에 적합한 산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형제 둘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 말이 다르지 않음을 듣고 1214년부터 오상을 받던 1224년까지 여섯 번 이 산에 오르게 됩니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로 대부분 순례자가 다니고 있지만,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이 다녔던 돌길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울창하고 거대한 너도밤나무와 전나무 숲으로 뒤덮인 산은 마치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듯 장엄하게 솟아 있습니다. 

햇빛이 거의 새어 들어오지 않는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오르는 길은 마음을 고요와 사색으로 이끌고, 순례자를 일상의 번잡함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해 주며, 800년 전으로 돌아가 이 길을 오르던 프란치스코의 마음은 무엇이었을지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라 베르나 성지에 도착하기 전 가파른 길 때문에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즈음 조그만 경당이 나타납니다. 문이 닫혀 들어갈 수는 없지만 문 중앙에 뚫려 있는 작은 격자 틈으로 어둑한 안을 들여다보면 새 떼에 둘러싸인 프란치스코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전기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는 프란치스코가 처음 라 베르나에 오르는 도중 강하고 공격적인 맹금류부터 작고 연약한 참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새들이 요란한 날갯짓으로 프란치스코를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험준하고 고립되어 보이는 이 장소가 얼마나 거룩한 장소인지를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통해 보여 주신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당은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602년에 세워졌습니다.

새들의 경당을 지나 약 100m 길을 오르다 보면 중세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나게 되고 문 위에 써진 라틴어 문장은 다시 한번 이곳이 거룩한 장소임을 되새겨 주며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Non est in toto sanctior orbe mons(이 산보다 거룩한 산은 세상에 없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프란치스코 성인이 봉헌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습니다. 1216년 프란치스코는 기도 중에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발현한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고, 마리아는 프란치스코에게 이 성당의 크기와 지을 장소를 직접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는 칸막이로 나뉘어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앞 공간은 1250년부터 10년간 확장된 곳이고, 수도자들의 기도 좌석이 있는 안쪽 부분은 프란치스코가 직접 봉헌한 공간입니다. 칸막이벽 양쪽에는 롭비아 가문의 안드레아와 그의 아들이 만든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든 테라코타 두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 안토니오가 함께 있는 예수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서 내려져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함께 무덤에 모시는 피에타입니다.

값비싼 대리석이 아닌 진흙이 주재료인 테라코타는 가난이라는 프란치스코의 성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예술 작품들은 모두 테라코타로 되어 있습니다.

수도자들의 기도석이 있는 제단 위에는 역시 안드레아가 단독으로 1488년에 만든 테라코타 부조가 있습니다. 중심에는 얼굴과 여섯 개의 날개로 표현되는 세라핌과 케루빔에게 둘러싸인 동정 마리아가 있고 그 아래에는 왼쪽부터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 사도 성 토마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 보나벤투라가 동정 마리아의 승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모 마리아는 성 토마스에게 당신의 성스러운 허리띠를 내려 주고 있는데,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상처 난 옆구리에 손을 넣었던 성 토마스가 또다시 동정 마리아의 승천을 믿지 못하자, 마리아는 당신의 허리띠를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 성유물은 피렌체 근교에 있는 프라토 대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중앙 제대 아래에는 1262년에 선종한 오를란도 백작의 무덤이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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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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