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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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83억 명의 예수가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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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갈등이나 폭력이 없으면 평화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갈등이나 폭력이 없던 적은 없다. 어떤 개인이나 소집단이 일시적으로 내적 안정감을 누릴 수는 있지만, 두고두고 지속되지는 않는다. 사회와 국가로 가면 갈등 구조는 복잡해지고, 평화는 더 요원해진다. 세상은 풍요로운 혼자만의 섬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이 저마다 형편에 따라 생각하면서 긴장하고 부대끼는 구체적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마태 5,9 참조)이라 가르쳤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이들이 수십억 명이나 되어도 세계는 평화롭지 않다. 같은 종교 안에도 모순적 문제들이 계속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그리스도교인까지 살상하는데 한국이나 미국의 그리스도교인이 잘 모르거나 묵인하거나 동조하기도 한다. 같은 정교회 국가끼리 전쟁하면서 저마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기도한다. 종교인도 평화마저 자기중심적으로 상상하고, 조직과 제도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틀지어져 있다는 뜻이다.

만일 오늘의 지구에 예수 같은 이들 83억 명이 산다면(2026년 세계인구는 약 83억 명), 긴장이나 갈등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83억 ‘예수들’의 생활 환경과 방식이 워낙 다양하기에 차이에서 오는 긴장이 없을 수 없다. 북극 지방에 사는 예수1, 열대 지방에 사는 예수2, 농부 예수3, 도시 노동자 예수4, 서울 예수5, 평양 예수6, 화려한 뉴욕의 예수7, 가난한 부룬디 마을의 예수8, 이스라엘의 예수9, 팔레스타인의 예수10, 남자, 여자, 아이, 청년, 노인 예수…. 

이들의 세밀한 속생각이 다 같을 수 없다. 모두 인격적, 영성적, 이타적이라 해도, 그 선한 의도가 전체에 미치지 못하고 개인의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밭일하고, 집을 짓고, 설거지하고, 미사를 드리고, 노동하고 돈을 벌고, 반도체를 만들고 데이터센터를 반대하고, 덩치가 크고 키가 작고…

환경과 조건이 다르면 삶도 같을 수 없다. 그 차이에서 오는 긴장이 없을 수 없다. 많은 이가 자원을 배분하는 정책에 어렵사리 합의해도, 합의를 실행하는 과정에 다시 양지와 음지가, 더 포용하고 덜 포용하는 차이가 생긴다. 모두 이타적으로 살 준비가 되어 있어도, 무엇이 이타적 실천인지에 대한 여러 해석으로 설왕설래하기도 한다. 

예수1은 ‘약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자본과 재원을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예수2는 ‘더 나누기 위해서 더 많이 거둬야 한다’ 제안하고, 예수3은 ‘더 걷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들 선한 의도의 표현이지만, 선한 의도들이 긴장과 갈등으로 이어지고, 공장에서의 노동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오늘의 예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탈까.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로 움직이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할까. 아파트를 소유할까. 가난한 이를 도우려 당장 현장으로 갈까. 오래 걸리더라도 지원의 제도화를 위한 국제정치에 뛰어들까. 사회를 바꾸려 정당 정치에 참여할까. 아니면 문명에서 자유로운 수도자로 살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지구에 예수 같은 이들만 살았다면, 지금처럼 갈등과 폭력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인류는 비할 수 없이 가난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물론 좀 더 행복한 가난일 것이다). 여하튼 전적으로 다른 세상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평화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여럿이 사는 사회, 조직과 제도는 늘 긴장과 갈등 속에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완전한 평화는 있기나 한 걸까.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갈등과 상처를 줄이기 위해 피차 노력해야 할 뿐이라는 것이다. 풍요로운 소비가 아니라, 가난으로의 연착륙을 준비해야 하리라는 것이다. 여기의 갈등 축소가 저기의 갈등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살피면서…. 그렇게 갈등, 폭력 그로 인한 누군가의 상처를 줄여가는 과정만이 인류 최후의 과제, 평화인 것이다.

글 _ 이찬수 박사(종교평화학자, 가톨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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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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