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낙태 유도 약물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처음 2년간 병원에서 처방과 조제를 함께 하고 이후 의사 처방과 약국 조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절차를 정교하게 만든다고 낙태의 본질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인간 생명이 수정되는 순간부터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한결같이 가르쳐 왔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낙태는 목적이든 수단이든 무고한 인간 생명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임신 9주라는 기준도 생명의 존엄을 가르는 경계가 될 수 없다. 태아는 임신 주수나 발달 정도에 따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얻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낙태약의 ‘단계적 도입’이 결국 접근성 확대를 예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는 먼저 왜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지 살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 양육 부담과 두려움 속에서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해도 삶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다.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을 서로 대립시키는 방식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위기 임신 상담과 주거·생계·의료·양육 지원,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가 촘촘히 마련돼야 한다. 정부가 서둘러 마련해야 할 ‘단계적 로드맵’은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의 로드맵이어야 한다. 가장 약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생명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 생명을 품은 여성도 지키는 것, 그것이 생명 존중 사회가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