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기울어진 성별 운동장을 바로잡고자 성별 임금 격차 공시, 이사회 여성 할당 같은 권리를 논하고 법제화까지 이뤄내고 있다. 반면 빈곤국 여성들은 배울 권리, 결혼을 거부할 권리 같은 기본권마저 빼앗긴 채 착취에 내몰린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매년 약 1200만 명의 소녀가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남자의 ‘소유물’이 된 이상 학업 기회도, 착취자에 저항할 개인 역량을 기를 환경도 주어지지 않는다. 과연 그들은 그저 잘못된 땅에 잘못된 성별로 태어난 자신을 탓하고, 씹어 삼키듯 운명에 순응해야만 하는 걸까.
“남자가 할 수 있다면, 여자도 할 수 있어요.”
여성을 피동적 대상으로만 묶어놓는 이 폭력의 굴레로부터 소녀들을 해방하는 가톨릭계 NGO의 특색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눈길을 끈다. 국제개발협력단체 한국희망재단이 우간다 3개 지역에서 펼쳐온 직업기술교육훈련(Technical and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이하 TVET) 사업이다. 빈곤과 조혼, 학업 중단 위기의 소녀와 젊은 여성을 삶의 주체로 세우고, 여성에게 닫혔던 분야의 기술까지 익힐 수 있게 하고, 스스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 해 그들이 속한 가족, 마을,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까지 이끈다.
여성 할례, 조혼, 성폭력, 교육 소외 등 지구촌 소녀들을 고통받게 하는 구조적 차별과 폭력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고자 제정된 ‘세계 소녀의 날(10월 11일)’을 맞아 TVET 사업을 소개한다.
‘다리 끊긴 섬’ … 배우고 일할 기회조차 끊긴 소녀들
유니세프에 따르면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한 여성 혹은 소녀는 약 6억4000만 명에 이른다. 우간다도 예외가 아니다. 우간다 소녀와 젊은 여성들은 빈곤과 성차별적 사회규범, 조혼과 이른 임신, 가사·돌봄 노동의 부담이 겹친 복합적인 장벽 앞에 학업을 중단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로 나아갈 기회마저 잃고 있다.
유네스코 산하 아프리카역량강화국제연구소(IICBA)에 따르면, 2024년 우간다 소녀의 상급 중등교육 이수율은 20.3에 그쳤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소녀는 10명 가운데 2명꼴인 셈이다. 우간다 통계청(UBOS)의 ‘우간다 인구보건조사 2022’에서는 25~49세 여성의 42가 18세 이전에 처음 결혼하거나 동거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혼의 비극은 소녀들을 교실 밖으로 밀어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학업을 중단한 소녀들은 직업기술과 구직 정보, 사회적 관계망을 쌓을 기회까지 함께 잃으면서 낮은 소득과 경제적 의존으로 내몰리기 쉽다. 소녀들의 교육권 보장이 학교 복귀에 머물지 않고 일자리와 소득, 나아가 경제적 자립의 기반까지 닿아야 하는 이유다.

학교 복귀를 넘어 ‘자립’까지 … 우간다 3개 마을에서 움튼 희망들
재단은 이 같은 현실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배움과 일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권리의 관점에서 보며 사업을 시작했다. 재단은 현지 협력단체들과 함께 동부 부옌데 지역 키데라 마을의 ‘요셉학교(Joseph Girls Learning Centre)’, 중부 와키소 지역 칼리티 마을의 ‘소녀들을 위한 다목적교육센터(Multiple Learning Centre for Girls)’, 북부 람워 지역 마디오페이의 ‘타라 직업기술훈련센터(TARA TVET Center)’를 거점으로 TVET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은 학교 건물을 짓거나 기술 하나를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배움에서 소외된 소녀와 젊은 여성이 전문 기술을 익히고, 현장실습과 취업·창업 연계를 거쳐 안정적인 소득을 마련하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기까지를 하나의 과정으로 설계했다. 조혼과 10대 임신, 학업 중단으로 배움을 놓친 소녀들에게 다시 교육 기회를 주는 데서 출발해, 성별 고정관념 탓에 여성의 진출이 제한돼 온 산업 분야로까지 교육생들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 경계 따위는 소녀들을 막지 못한다
‘요셉학교’는 우간다 TVET 사업을 대표하는 여성직업기술교육훈련센터다. 빈곤으로 학업을 중단했거나 조혼과 10대 임신으로 배움을 놓친 소녀와 젊은 여성이 주된 교육 대상이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교육생도 아이와 함께 학교에 나와 배움을 이어간다.
요셉학교의 시작은 한 사람의 나눔이었다. 2019년 ㈜태서전기가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을 통해 지정기탁한 기금으로 첫 삽을 떴고, 2021년 3월 문을 열었다. 학교 이름 ‘요셉’은 나눔을 실천한 ㈜태서전기 정재식(요셉) 대표의 세례명에서 따왔다. 한 사람의 나눔이 키데라 마을 소녀들의 배움으로, 소녀들의 꿈이 다시 지역사회의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개교 첫해 가르친 기술은 제과제빵, 봉제, 미용 등 세 가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바보의나눔 공모배분사업과 재단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목공, 건축, 금속가공, 전기·태양광 과정이 새로 생겼다. 지금은 총 7개 전공을 운영한다. 봉제나 미용처럼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 온 영역에만 소녀들을 묶어두지 않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로 키워내기 위한 변화다.
교육생들은 그 변화가 실제 열매를 맺었다고 고백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가 이런 과목을 배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자가 할 수 있다면,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기·태양광 기술을 배우는 밀드리드는 여자가 배울 과목이 아니라는 시선 속에서도 전기 배선과 태양광 기술을 익히고 있다. 꿈은 엔지니어.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기기술 가게를 여는 게 목표다.
금속가공 과정의 마그렛은 입학 7개월 만에 동료 교육생들과 책상과 의자, 창문과 문을 만들어 냈다. 그 의자는 학교에서 실제 쓰이고 있다. 배운 기술은 다시 나눌 생각이다. “졸업 후에는 기술 관련 가게를 열고, 다른 소녀들에게도 기술을 가르치고 싶다”고.
건축을 전공한 레이첼이 직접 만든 벽돌은 학교 식당을 짓는 데 쓰였다. 레이첼은 지역 주민들의 일손을 거들며 벌이도 생겼다. 엔지니어가 돼 부모님을 돕는 인생 목표도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전선을 잇고, 쇠를 다듬고, 벽돌을 쌓는 소녀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손끝에서 여성도 전문 기술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성평등 실천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바람 불수록 타오르는 불처럼, 배운 기술을 지속 가능한 소득으로
기술을 배웠다고 곧바로 일자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요셉학교가 교실 밖까지 길을 이어 놓은 이유다.
기술교육에는 인턴십과 산업현장 방문, 취업 역량 강화 교육, 멘토링이 짝을 이룬다. 성과는 숫자로 드러난다. 지금까지 직업기술 자격검정시험에 응시한 교육생 약 200명이 모두 합격했다.
성과에 힘입어 요셉학교는 일터까지 가꿨다. 2025년에는 졸업생의 취업과 실무 경험을 넓히고자 건축 컨설팅 회사를 세웠다. 현재 진행 중인 기숙사 건축에도 교육생들이 직접 참여해 전공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소녀들을 위한 다목적교육센터’도 소녀들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게 붙든다. 2019년 문을 연 이 센터는 학교에 다니는 소녀에게 방과 후 학습지도와 직업기술교육을 제공해 스스로 교육비를 마련하며 학업을 이어가게 한다. 학업이 끊긴 젊은 여성에게는 취업과 창업을 위한 기술교육을 지원한다.
봉제, 미용, 수공예 등을 익힌 교육생들은 코로나19 확산 당시 마스크와 손소독제, 액상 비누 등 위생용품을 직접 생산, 판매하며 위기 속에서도 소득을 만들어냈다. 이 경험은 현재 재사용 면 생리대 생산·판매 사업으로 이어져 지속 가능한 소득 기반이 되고 있다. 참여자들은 사업자등록까지 마치고 사회적기업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별 하나하나가 수놓은 은하수 … 한 소녀를 넘어 한 마을까지 찬란한 빛을 발하게
마을 주민들이 내놓은 약 5에이커(약 2만㎡)의 땅에 2024년 건축을 시작한 타라 직업기술훈련센터는 배움의 문을 소녀와 젊은 여성뿐 아니라 지역 청년에게까지 열고 있다. 센터는 봉제, 건축, 금속가공, 미용, 목공, 제과제빵 6개 과정을 운영한다. 졸업생 가운데 일부는 취업해 가족의 생계를 돕고 형제자매의 학비를 보태고 있다.
재단은 이 변화가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도록 다음 단계를 기획하고 있다. 졸업생의 취업·창업 연계를 강화하고, 교육생의 소득 변화와 가족·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을 꾸준히 살필 계획이다. 먼 곳에 사는 교육생도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숙사와 위생시설을 보완하고, 소녀 교육과 여성의 경제활동이 당연한 권리이자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자리 잡도록 인식개선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희망재단 이사장 서북원(베드로) 신부는 “한 소녀가 학교로 돌아와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힘으로 소득을 얻기 시작하면, 그 변화는 결코 그 소녀 한 사람에게서 멈추지 않는다”며 “가족의 생활이 안정되고, 동생이 학교에 다니고, 어머니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마을 전체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TVET 사업의 결실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간다의 소녀들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배움을 원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 기회를 붙잡고 있다”며 “이들이 가진 잠재력이 가난과 관습이라는 이유로 꺾이지 않도록, 재단은 앞으로도 그 곁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