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반주자로 있을 때인 2000년대 초, 당시 보통의 성당 성가대에서는 보다 은총 충만한 전례에 도움이 될 만한 성가곡 자료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대축일을 준비할 때마다 새로운 미사곡과 성가대 특별 찬미가를 찾느라 애쓰던 중 아르스노바 합창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르스노바의 이철수 지휘자님은 특히 수채화처럼 투명한 음색과 섬세한 음정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셨고 또 탁월한 효과를 끌어내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혼자만의 기량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인내와 사랑의 호흡이 일치될 때 울려 나오는 감동의 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합창단에서의 활동은 그동안 목말라 있던 성음악에 대한 갈망을 많이 해소해 주었다. 이후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가 발족했고 교구 차원에서 많은 음악인의 활동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며 반주자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실제 미사 전례와 성가대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전례는 사제와 교중, 성가대가 함께 기도로 이끌어 가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너무 음악적인 기량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지니는 신앙적인 울림으로, 보다 교중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성가의 은총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성주간의 중요한 전례인 여러 편의 따름 노래와 시편에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면, 단아한 성가대의 소리와 웅장한 회중의 대비되는 교송이 어우러져 풍성하고 아름다운 감동으로 성전 전체를 울릴 것이다.
아르스노바에서의 훈련을 통해 얻은, 면도날처럼 날렵하고 새털처럼 가벼운 음정 조절은 여럿이 함께 화음을 만들 때 귀를 열고 순간순간 스스로 조율해 가는 능력이다. 즉, 남의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나의 소리를 맞춰 내는 것인데, 듣지 않는다면 면도날이 무디어지고 새털은 갑옷이 될 것이다.
비단 음악에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듣는 것보다 자기 소리를 먼저 내고, 함께 맞추려 하기보다 자기주장을 펴는 것이 더 능력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유명한 「가문비나무의 노래」의 저자인 마틴 슐레스케는 그의 두 번째 저서 「바이올린과 순례자」에서 “성서는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성서는 우리 안에 공명판을 찾습니다. 우리가 듣는 가슴을 지니지 못하면 성서는 입을 다물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듣는 가슴’을 공명판이라고 했다.
듣는 가슴은 매 순간 말씀에 열려 있으므로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게으름이나 교만으로 무디어지지 않아 우리 영혼을 깨우침의 맑은 울림으로 가득 채워 준다.
그 울림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다른 울림과 함께 조화롭게 울릴 때 창조주가 만드신 법칙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것이 기도가 되고 찬미가 된다.
연장이 무디어지면 날을 바로 세워야 하듯이 듣는 가슴이 무뎌지지 않도록 타성에서 벗어나 참된 공명판으로서 성음악인의 역할을 겸손하게 봉헌해야 할 것이다.

글 _ 조정숙 풀케리아(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아르스노바 합창단 부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