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는 소통의 혁명 시대를 맞이했다. 누구나 실시간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SNS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아고라’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디지털 광장은 소통과 연대의 장이 아닌 가짜 뉴스, 혐오 표현, 근거 없는 인격 모독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변질되었다. 특히 정치권의 풍경은 참담하다.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대안 제시는 사라진 지 오래이며, 오로지 상대 진영의 인격을 말살하고 사회적 생명을 끊기 위한 고발과 비방만이 난무한다. 이러한 세태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인 정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이 왜 인간의 도덕적 탁월함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의 언어는 왜 이토록 불의에 가득 찼는가?”, “이웃의 사회적 신망을 파괴하는 행위는 단순한 말실수인가, 아니면 본질적인 악습인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점에서 볼 때, 기술은 외적 행위의 속도와 파급력만을 증폭시켰을 뿐, 인간 내면의 ‘의지의 올바름(rectitudo)’이라는 도덕적 습성을 도외시하게 했다. 즉, 올바른 지향을 잃어버린 기술적 도구가 불의한 의지와 결합하여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흉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행위와 언어의 도덕성을 엄밀히 규명한 토마스의 통찰을 살펴보자.
온라인 소통 수단 발달했지만 인격마저 짓밟는 행태 만연
타인 공격하는 ‘언어적 불의’, 정의 위협하고 공동체 훼손
언어를 통한 불의의 본질
토마스에 따르면, 정의가 다루는 대상은 단순히 물질적인 사물에 국한되지 않고 ‘언어’를 포함한다.(II-II,58,8)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결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권리를 확정하는 정의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정의의 결핍인 ‘불의(iniustitia)’에 해당한다.
토마스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명백한 의도(intentio)를 가지고 타인의 선을 해치려는 언어적 행위의 무게감을 엄중히 평가한다. 그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불의한 행위가 영혼의 생명인 ‘참사랑(caritas)’을 직접적으로 거스르는 ‘사죄(peccatum mortale)’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II-II,59,4) 특히 현대 SNS의 익명성은 이러한 참사랑의 인격적 관계를 단절시키며, 죄의 가책 없이 타인의 사회적 생명을 파괴하려는 의지적 공격을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모욕·중상 등 행위 멈추고 ‘올바른 의지’ 갖춰야
관계 회복 통해 서로의 행복 보장할수 있어
면전에서의 ‘모욕’과 등 뒤에서의 ‘중상’
언어를 통해 타인의 사회적 신망을 무너뜨리는 구체적인 형태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모욕과 중상이다. 모욕(contumelia)은 타인의 면전에서 명예를 거스르는 말을 통해 망신을 주는 행위다. 토마스는 이를 타인의 명예를 직접적으로 강탈하는 폭력적 행위로 규정하며, 그 성격이 ‘강도’와 유사하다고 보았다.(II-II,72,1) 이는 상대방의 인격적 존엄을 현장에서 파괴하는 명백한 공격이다.
모욕이 정면 공격이라면, 중상(detractio)은 은밀한 말로 이웃의 명성(fama)을 제거하는 비겁한 행위다. 토마스는 명성을 세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평가하기에, 이를 앗아가는 중상은 ‘절도’와 같으며 반드시 ‘배상(restitutio)’의 의무를 지님을 강조한다.(II-II,73,1-2) 특히 익명 게시판이나 비공개 단체 채팅방에서 이루어지는 루머 유포는 중상의 전형적인 현대적 형태다. 디지털 환경에서 중상은 더욱 치명적이다. 한 번 훼손된 명성은 무한히 복제되어 유포되기에, 토마스가 강조한 배상의 의무를 실천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관계를 단절시키는 ‘불평’, 인격을 훼손하는 ‘조롱’, 언어 폭력의 극단인 ‘저주’
명예와 명성에 대한 공격이 사회적 자산을 훔치는 것이라면, 다음의 행위들은 공동체의 근간인 우정과 인격 자체를 겨냥한다. 불평 또는 중상모략(susurratio)은 단순한 불만 토로가 아니라, 이간질을 통해 우정을 갈라놓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악의적 행위다. 토마스는 불평이 중상보다 더 큰 죄가 된다고 비판한다.(II-II,74,1-2) 인간에게 우정은 외적 명성보다 더 본질적인 선이며,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는 행위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해악이기 때문이다.
조롱(derisio)은 인격 자체를 깎아내려 상대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행위다.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특정 대상을 향한 ‘밈(meme)’이나 희화화는 토마스가 경고한 조롱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상대방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잔인한 불의다. 특히 상대의 명성이 클수록, 혹은 상대가 취약한 상황일수록 조롱의 죄는 더욱 무거워진다.(II-II,75,1-2)
언어적 불의의 극단은 이웃에 대해 악을 바라며 퍼붓는 저주(maledictio)다. 토마스는 저주를 단순한 감정적 폭발이 아니라, 타인에게 실질적인 악(벌)이 임하기를 바라는 의지적 선택으로 정의한다.(II-II,76,1) 이는 정의의 관점에서 타인의 안녕을 바라야 할 도덕적 의무를 근본적으로 저버리는 행위다. 또한 토마스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저주하는 행위가 지니는 불경함을 지적한다.(II-II,76,2) 하느님의 모상인 타인에 대한 저주는 단순한 개인적 원망을 넘어 존재의 질서 자체에 대한 반역이자 창조주에 대한 모독이다.
현대 SNS 공간의 혐오와 정치적 모독은 기술의 부작용을 넘어, 타인의 권리인 명예와 명성을 강탈하는 명백한 ‘불의’의 산물이다. 토마스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언어가 불의에 가득 찬 이유는 우리가 언어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려주는 도구’가 아닌, 타인의 몫을 빼앗아 자신의 ‘영향력’과 ‘조회수’를 챙기려는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정의의 핵심이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려주는 것이라면, 디지털 공간에서의 정의는 타인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존중과 신망을 되돌려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비록 온라인 공간이 익명성 뒤에 숨어 있다고 할지라도, 타인의 사회적 신망을 보호하려는 ‘올바른 의지’를 갖추는 것이 공동선 실현의 필수 요건이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도 타인의 몫을 존중하는 언어적 정의를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의 디지털 아고라는 진정한 소통의 장이 되어 서로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

글 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