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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존재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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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잃었다. 5년이 넘는 투병 기간, 그 마지막 3개월은 나 자신을 준비시키고 훈련도 해보았지만, 막상 어머니가 떠나신 후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음처럼 다가왔다. 왜였을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하고 선한 사람, 어머니가 힘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때문이었을까? 병간호로 잠시 멈추었던 내 직업적 성취와 시간이 응답받지 못했다는 분노였을까? 알 수 없었다.

장례식날 이모님들이 위령미사를 봉헌하길 권하셨다. 하, 나는 교적상 냉담자가 아닌가…. 하지만, 많은 딸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머니를 위해 무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50일 위령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매일 미사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주로 저녁에 있었지만, 새벽에만 있거나 행사 때는 시간이 이동되기도 했다. 겨울 그 추운 새벽,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렇게 눈까지 오는데, 그 큰 성당에 나만 있으면 어쩌지?’라는 대단한 고민과 함께….

이런 생각은 성당에 들어선 순간 언제나 나를 멋쩍게 했다. 입구부터 깨끗이 치워져 있는 눈, 따뜻해져 있는 성당, 기도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 깜깜한 새벽 택시에서 내리는 교우들. 헛웃음과 함께 고마움이, 또 왠지 모를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모두가 나처럼 위령미사를 위해 나오는 것은 아닐 텐데,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이런 궁금증은 ‘왜 나는 저러한 열정적인 신앙심을 가지지 못할까?’, ‘하느님은 왜 이리도 과묵하실까?’라는 나의 오랜 화두에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 어머니 상황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묻기와 원망이 반복되는 동안, 다시 익숙한 침묵과 만났다. 그러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매일 미사 안에서, 절실히 기도하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묵묵히 전례를 준비하는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서 그리고 성당 그 자체에서 내가 힘을 얻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시간이 준 자연스러운 회복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상투적이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그 끝없는 침묵도 주님 표현의 한 방식임을, 위령미사를 핑계로 나는 매일 기대고 쉴 곳을 찾아갔음을, 그리고 때로는 가장 필요했던 위로와 평화를 성당이라는 공간과 그 안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통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이제 나는 어디에 있든 주일미사를 우선순위에 둔다. 그리고 내 신앙은 여전히 덤덤하다. 어느 영화 속 대사에서 “신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무겁고 때로는 두렵고 답답하기까지 한 그 침묵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성당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응답하라…’를 되뇌는 내 모습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_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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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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