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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라 베르나(La Verna), 프란치스코의 골고타 언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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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을 나와 오른편으로 오르면 라 베르나 성지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해시계의 광장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장소는 1612년 자코포 리고찌(Jacopo Ligozzi)가 대성당 종탑 벽에 지금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를 만들어 놓은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광장에는 이 산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하늘과 계곡과 나를 이어주는 중심처럼 서 있으며, 카센티노 계곡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은 바깥세상과 신성한 공간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성모 승천을 기념하여 14세기에 봉헌된 바실리카 대성당입니다. 성당 내부에는 안드레아 델라 롭비아의 수태고지, 예수 탄생, 예수 승천 등 테라코타 작품을 볼 수 있고, 유물 소성당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이 라 베르나에서 오상을 받을 때 입고 있던 수도복과 오를란도 백작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사용한 손수건, 밥그릇, 물잔과 오상의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묻은 천 조각, 라 베르나 산을 오를 때 사용한 지팡이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성인의 시간으로 우리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인도하는 듯합니다.

광장과 연결된 계단을 따라 아래에 있는 ‘사소 스피코(Sasso Spicco)’는 라 베르나 지역 전체에서 가장 강렬하고 거칠며, 영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곳 중 하나입니다. 깊고 좁은 협곡 위로 솟아오른 거대하고 인상적인 암벽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골고타 언덕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땅을 뒤흔든 지진에 의해 이 거대하고 갈라진 바위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이 협곡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현존이었습니다. 성인은 사소 스피코의 희미한 빛과 고립된 환경을 고독한 기도와 참회 그리고 그리스도 수난의 신비에 대한 깊은 묵상을 위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선택했습니다.

사소 스피코 위에는 14세기 후반 모든 은수자의 주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봉헌된 경당이 있습니다. 라 베르나 성지에서 가장 아늑하고 유서 깊은 장소 중 하나로, 1214년 프란치스코 성인이 라 베르나 산에 처음 올라와 기도하고 잠을 자던 첫 번째 초막이 있던 장소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성당 안에 보관된 가장 귀중한 보물은 바로 ‘약속의 탁자(Mensa delle promesse)’입니다. 현재 제대에 끼워진 이 돌은 성인이 잠자리이자 소박한 식사를 위한 식탁으로 사용했던 바위였을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어느 날 성인이 기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바로 이 바위에 앉아 그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순례자들은 그 신비로운 돌을 만져보며 예수님의 현존을 지금 바로 여기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오상 경당’을 가기 위해서는 바실리카 대성당과 연결된 ‘오상 회랑’을 지나야 합니다. 오상 회랑은 대성당과 오상 경당을 연결하는 건축적, 신학적 구조물입니다. 1578년에서 1582년 사이 건설된 이 길고 지붕이 덮인 통로는 원래 혹독한 겨울철에 산을 강타하는 매서운 바람, 비, 눈으로부터 수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회랑이 건설되기 전 수도자들은 험준하고 종종 얼어붙은 길을 따라 악천후를 무릅쓰고 경당에 가야만 하였습니다.

당시 행렬은 하루에 두 번, 낮과 밤에 진행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후 3시에 경당 방향으로, 오후 3시30분에 대성당 방향으로 행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어느 날 밤 강한 눈바람 때문에 수도자들은 그날 밤 행렬을 포기하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행렬을 위해 이곳에 모인 수도자들은 눈 위에 수많은 발자국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숲속 동물들이 수도자들을 대신해 행렬했던 것입니다. 이 기적적인 사건은 날씨와 관계없이 행렬을 할 수 있는 회랑 건설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도의 벽면에는 피렌체 화가 바초 마리아 바치(Baccio Maria Bacci)가 20세기에 그린 프란치스코의 이야기가 18점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현대적인 스타일이면서도 전통을 존중하는 이 그림들은 프란치스코의 회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감동적인 순간들을 묘사하며 순례자들에게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회랑 중간쯤에 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깊고 축축한 바위틈 사이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침대가 보입니다. 아시시의 가난한 사람 성 프란치스코는 차갑고 습기 많은 곳에서 잠을 자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십자가 고통에 오로지 일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라 베르나 성지의 신학적·영적 중심지인 오상 경당은 1263년 시모네 다 바티폴레(Simone da Battifolle) 백작의 요청으로, 1224년 9월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리스도 수난의 인장을 몸에 받은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이 경당은 단순하고 소박한 건축 양식을 띠고 있으며 수도자들이 매일 기도하는 자리가 양옆으로 채워져 있고, 제대 정면에는 안드레아 델라 롭비아가 1481년경 제작한 기념비적인 테라코타 십자가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흰색과 파란색이 주를 이루는 이 작품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눈물을 흘리는 천사들과, 그의 발치에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 성 요한, 성 프란치스코, 성 예로니모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상 경당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는 제단 앞 바닥에 대리석 테두리로 표시된 곳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1224년 9월 14일경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이 세운 수도회 안에서 형제들 사이에 여러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극심한 고통과 혼란 속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섯 날개를 지닌 세라핌 천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프란치스코를 초대하며, 그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그리스도의 상흔을 새겨 주었습니다.

이곳은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통해, 세상 삶의 무게를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우리 모두에게 드러내신 자비의 장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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