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경기도 의왕 모락산 자락에 있는 아론의 집에 들어갔다. 1박 2일 일정이었다. 2017년 기본 단계 피정을 마친 뒤 9년 만에 다시 참여하는 심화 단계 피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쉬고 다음에 가지 뭐.’ 그렇게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다 단원들의 권유를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따라나섰다. 몸은 아론의 집에 왔지만, 마음은 아직 집에 두고 온 것 같았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아론의 집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입구에는 ‘아들과 딸아, 침묵 속에서 너를 만나고 싶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번에는 꼼짝없이 잡혔구나. 도망도 못 가겠네.’
피정 일정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오후 2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십자가의 길, 성체조배, 소성무일도, 강의와 성찰이 이어졌다. 다음 날도 아침부터 기도와 토론, 미사, 역할극이 계속됐다. 세상에, 이건 피정이 아니라 ‘신앙 체력 단련 극기 훈련’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성체조배와 성찰이었다. 모두 경건한 모습으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어떤 단원은 하느님이 보였다고 했고, 또 어떤 단원은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궁금해서 옆 사람에게 물었다. “정말 보였어요? 정말 들렸어요?”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하느님 대신 온갖 잡생각만 떠올랐다. ‘왜 나만 이럴까?’ 싶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에 밖으로 나왔다. 모락산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어둠이 아직 산자락에 남아 있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사람의 말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발걸음 소리와 차가운 숨소리만 들렸다. 평소에는 TV 소리와 휴대전화 알림, 사람들의 말소리와 세상의 번잡함에 묻혀 살아왔다. 그날 새벽만큼은 그런 소리가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지자 오히려 내 안의 생각들이 선명해졌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잡생각만 가득했던 그 시간이, 어쩌면 내게는 진짜 침묵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소리가 멈추니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았다. 피정은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면서, 세상의 소음에 묻혀 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위해 기도했다. 모두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가기를, 우리 쁘레시디움도 오래도록 굳건하기를 바랐다. 가기 전에는 그렇게 부담스러웠는데, 돌아오는 길의 마음은 새벽 공기처럼 한결 맑아져 있었다.
피정에 아직 참여하지 못한 단원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도 9년이나 미뤘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잡생각만 가득해도 괜찮다. 잠시 세상의 소리를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 _ 김민석 펠릭스(수원교구 안산성마리아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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