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서」 제4부 ‘풍성한 고기잡이’의 첫 단원(109~119항)은 ‘뿌리내림과 순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두 개념은 대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접속사 ‘그리고’로 이어져 있다.
이 소단원은 도시화와 이주, 디지털화로 ‘장소’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에, 교회가 지역교회(116항), 본당(117항), 축성 생활회와 새로운 공동체 운동(118항),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중간 연합체(119항)라는 기존의 조직 형태를 보존하면서도, 그 형태들이 고정된 영토가 아니라 유동적인 ‘실존적 영토’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그물망에 응답하도록 창의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복음 선포는 사람들의 마음에 신앙을 일깨워 구체적 장소에 뿌리내린 교회를 낳는다.(110항) 교회는 하느님과 만남의 경험이 이뤄지는 구체적 시공간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그렇지만 뿌리내림의 방향은 안쪽이 아니라 밖으로 향한다. 시노드적 회심은 모든 이에게 ‘마음의 터’를 넓히라고 초대하며, 사목은 이미 서로 공감하는 이들 사이의 관계를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이와의 만남을 증진해야 한다. 뿌리내림은 폐쇄의 이유가 아니라 만남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뿌리가 놓일 땅이 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장소’의 개념은 더 이상 지리적, 공간적 용어로만 이해될 수 없고, 관계의 그물망과 문화적 소속과 관련된다.(111항)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다수 인구가 도시에 살게 됐고, 대도시는 종종 역사도, 정체성도 없는 집합체가 돼 사람들은 마치 섬처럼 살아간다.
본당과 교구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난민과 이주민의 증가, 디지털 문화의 확산은 공간과 시간의 감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더 연결된 듯하지만 더 외롭고, 조작과 양극화에 노출된 이 환경을 「최종문서」는 피해야 할 곳이 아니라 예언적 선교의 장으로 받아들인다.(113항)
이 모든 변화는 교회가 ‘지역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그 구조적 형태를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114항) 장소는 인간 경험이 형태를 얻는 역사적 실재이며, 교회는 그 관계의 그물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사임을 표현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교회헌장」 1항)
「최종문서」는 뿌리내림과 순례를 모순으로 보지 않는다. 뿌리내림을 지리적 고정으로 이해하면 이동하는 삶과 충돌하지만, 관계망과 소속으로 이해하면 이동하면서도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 없는 뿌리내림은 닫힌 집, 곧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곳(115항)이 되고, 뿌리 없는 이동은 고립과 정체성의 상실을 낳는다.(111~112항)
115항 ‘집’의 이미지는 이 둘을 잇는다. 닫히지 않은 집은 환대와 포용의 가능성을 열고, 그 안에서 신자는 모두 희망의 순례자로 불린다. 교회는 처음부터 ‘아직’ 시간 속에서 순례하면서 ‘이미’ 천상 교회와 친교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이기 때문이다.(17항)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