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st Endure”(그냥 버텨)
조직위에 와서 종종 교황님 소식을 듣는데, 작년쯤 교황님께서 한 신자를 접견한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신자는 자신의 고달픈 삶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교황님 제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시던 교황님의 답변은 간단함을 넘어 저에게는 살짝 충격적이었습니다. “Just Endure.” 신자의 힘든 현실을 위로하시고 아픈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시며 “괜찮냐, 힘내라~”라는 격려의 말씀을 예상했지만, 답변은 “그냥 버티세요???”
그저 버티라는 말씀이 너무 와닿아 인터넷을 찾아보니 “Just Endure”라는 구절은 영미권에서는 격언이었습니다. 힘들어도 버텨. 그냥 버텨. 왜? 버티다 보면 끝이 보이고 빛이 보이고, 그렇게 버티면서 나 자신은 더 강해지니까. 그러니 넘어지지 않는 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 보다 더 강한 힘은 넘어진 그 자리에서 그 고통의 시간을 버티는 힘입니다.
2025년 9월 서울 WYD 조직위에 들어와 여러 관계 부처와 단체들을 방문하며 대회를 홍보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자리에서 모두가 하나같이 보였던 반응은 “WYD가 뭐야?”였습니다. 모두가 저희 WYD 조직위의 연락과 방문을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어디를 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부탁을 해도 시큰둥했습니다. 본당 주임신부님들도 대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부족했던 초창기 시절이니 공무원분들도 충분히 그럴 만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대회를 소개하고 협조를 요청했지만 그렇게 빈털터리 맨손으로 사무실로 돌아오는 저 자신을 보면서 마치 동네 이벤트 행사에 싸구려 물건을 파는 영업사원이 된 듯한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행사가 얼마나 중차대한, 요즘 말로 ‘어마무시’한 행사인지. 그래서 셀 수 없이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때가 익고 무르익으면 판이 벌어질 것이니 그 판이 벌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아니, 버텨라.”
개인적으로 군사 쪽에 관심이 있고 그중에 병법을 가장 좋아합니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쟁의 클라이맥스는 세(勢)다. 세가 싸움의 관건이다. 사납게 흐르는 물이 돌을 굴리는 힘, 그게 바로 세다.
전투가 시작되면 집채만 한 바위도 굴릴 만큼 거침없이 쏟아지는 계곡물과 같은 기세로 적을 향해 쳐들어가야 한다. 세가 기울어 아군 쪽으로 넘어가면 그 몰아붙이는 기세로 한 번에 끝내야 한다. 그러니 정말 위대한 도전은 열세를 우세로 역전시키는 전략이다.”
버텨라! 세가 기울 때까지
그러면 열세인 이 WYD 판을 어떻게 우세로 역전시킬 수 있을까요? 일단 버텨야 합니다. 이 대회의 판이 벌어질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은 우리 편+예수님 편입니다.
2026년 10월 지금의 시점은 아직 세가 기울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언제 기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내년 봄을 예상합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한국에서, 서울에서, 천주교가 어마어마한 판을 벌이고 있구나.” 모두가 대회를 주시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당에 계신 많은 신자분과 신부님이 본당의 숙소와 시설, 예산과 조직, 준비와 매뉴얼들 등에 관해 궁금증이 가득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세워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열세가 판이 기울어 우세가 되고, 모두가 바라는 대세가 되도록 만들어 세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세가 기울 때까지 신자분들 모두 기다려주시고 버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도 버티셨습니다
예수님도 버티셨습니다. 군사들의 채찍질에 끌려가는 것 같았지만 십자가를 지고 먼저 치고 나아가셨고 군중들은 십자가에 끌려갔습니다. 그렇게 예수님도 버티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숨이 넘어가실 때까지 버티셨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 열세를 우세로, 우세를 대세로 뒤집으셨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는 말씀은 전 세계 청년들을 초대하는 말씀이기도 하면서 빈털터리 서러운 영업사원 못지않게 지치고 고달픈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는 조직위 모든 사제, 수도자, 직원과 봉사자들에게 전해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버티었다~!
사납게 흐르는 물이 돌을 굴리는 힘, 그게 세다.
독수리가 먹잇감을 채가는 순간, 그것이 절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공격의 기세가 거침없고 순식간에 이뤄진다.
혼전이 벌어져 난장판이 되더라도 어지럽지 않고,
어지러워지더라도 지지 않는다.
- 「손자병법」 중

글 _ 김윤욱 루카 신부(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영성구현본부 행사총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