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당을 방문하든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 성당에서 게시판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살핀다. 혹시 멈추지 못할 때면 지나가면서도 눈은 게시판을 훑는다. 게시판에서 소식들을 챙기는 것이다. 자각도 없어서 이 습관을 비교적 최근에야 알았다. 동료기자가 성당 게시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다. 직업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는 직업병이 없어도 성당마다 게시판이 신자들의 눈길을 끈다. 게시판이 화사하고 재미있어졌다. 이해하기 쉬운 그림을 곁들이는 건 물론이고, 만화처럼 꾸민 포스터도 자주 본다. 인공지능(AI)의 순기능이다.
AI가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말하고, 정보를 처리하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일상에 접어들었다. 나아가 스스로 판단하는 AI가 등장하자 여러 언론들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유명 게임 속 로봇 캐릭터의 대사를 따라하며 장난스럽게 던지던 인터넷 유행어다. 이 말이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심지어 AI가 고통을 느낀다며 AI를 인간처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왕왕 들린다.
이제 우리는 AI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성찰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레오 14세 교황이 낸 회칙이 「고귀한 인류」다. ‘인류’로 번역된 후마니타스(Humanitas)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분명 게시판 훑기 정도는 인간보다 AI가 월등할 것이다. 그러나 동료의 모습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또 게시판을 훑던 그 성당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소중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