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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봉금의 뜰’ 추수하는 날…“알알이 영근 결실 함께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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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가을. 폭염과 폭우에 곡식이 제대로 여물 수 있을지 애태우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수확 철이 찾아왔다. 10월 20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 주변 논 대부분은 이미 추수를 마쳤지만 아직 벼가 남아 있는 논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빛 일색인 여느 논과 달리 검붉거나 분홍빛을 띠는 벼들이 가을바람 따라 흔들렸다. 가톨릭농민회 수원교구연합회 두물머리분회 김현숙(데레사) 씨가 가꾸는 ‘봉금의 뜰’이다.

“오늘 탈곡까지 다 할 거예요. 먼저 내년에 종자로 쓸 벼만 따로 고르고, 나머지는 다 같이 베어서 탈곡하려고요.”

오전 9시. 추수를 위해 비닐하우스에 모인 20여 명이 낫을 들고 200평 남짓한 논으로 들어갔다. 봄부터 함께 모를 심고 피를 뽑아 가꿔 온 벼를 거두는 날이었다.

한쪽에서 벼를 베면 다른 이들이 논둑으로 날랐다. 탈곡기 앞에 선 사람들은 발로 페달을 밟아 가며 한 움큼씩 벼 이삭을 가져다 대 낟알을 털어냈다. 또 다른 이들은 내년 봄에 다시 심을 종자를 따로 골라 갈무리했다.

봉금의 뜰에서 자라는 벼는 조금 특별하다. 이날 수확한 것은 다백조·조동지·붉은차나락·멧돼지찰·북흑조 등 다섯 품종의 토종 벼. 한 가지 품종만 대량으로 기르는 대신 여러 품종을 한 논에서 재배한다. 11월에는 거둔 곡식을 말리고 도정해 떡을 빚어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

다음 해를 위한 씨앗을 남기고 수확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것까지가, 봉금의 뜰 한 해 농사의 마무리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일구는 뜰

작은 논의 이름에는 한 사람의 이름과 시간이 담겨 있다. ‘봉금의 뜰’은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김 씨의 어머니 고(故) 한봉금(베로니카) 씨의 이름을 딴 곳이다. 

서울에서 일하던 김 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돕기 위해 2012년 귀농했다. 김 씨에게 농사는 단순히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김 씨는 “농사는 씨를 뿌리고 작물을 거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거둔 것을 잘 갈무리해야 비로소 완성된다”며 “그 마지막 일을 어머니와 마을 어르신들이 늘 함께 도와주셔서 농장 이름에 어머니 이름을 담았다”고 말했다.

모녀가 일군 땅에는 이웃 농부들의 손길도 스며 있다. 처음에는 농사지을 땅도 씨앗도 없었지만, 주변 농민들이 작은 땅을 내주고 씨앗과 모종을 건네며 힘을 보탰다.

당시는 4대강 사업으로 농지를 잃을 위기에 놓인 두물머리 농민들이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며 삶의 터전을 지키던 시기였다. 그곳에서 만난 임인환(프란치스코) 농부 역시 김 씨가 농사를 배우고 정착하도록 도운 이웃이다. 모녀가 친환경·유기농으로 봉금의 뜰을 가꿔 온 시간을 지켜본 임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데레사 누나가 워낙 사람이 좋아서 동네 어르신들이 참 좋아했어요. 어머니뿐 아니라 혼자 지내는 동네 어르신들 끼니까지 챙기며 딸 노릇을 했죠. 도시와 달리 농촌에서는 외로운 순간이 많습니다.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농부들에게 큰 힘이 되죠.”

흙이 이어 준 인연, 땅을 지키는 힘

어머니와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하던 봉금의 뜰에 새로운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화요일마다 농장에 모인다고 해 이름 붙은 ‘팀화요’다. 근처에 사는 농부부터 산림치유사, 요리사, 건축가, 농사에 관심 있는 청년까지 직업도 살아온 배경도 제각각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들은 화요일이면 함께 논에 들어가 흙을 만지고 일손을 나눈다.

팀화요 막내인 김석주 셰프도 그중 한 명이다. 김 씨는 “파스타를 만들면서도 밀이 어떻게 자라고 식탁까지 오는지 무관심했다”며 “직접 곡식을 기르고 수확하며 좋은 재료를 아는 것이 요리사의 기본자세임을 배웠다”고 말했다.

최하은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농장 소식을 접하고 이날 처음 이곳을 찾았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최 씨는 “대학생 때부터 취미로 농사를 지으며 지역 먹거리와 농민들에게 관심을 두게 됐다”며 “직장 생활 중에도 가끔 연차를 내 이런 활동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논에 들어서면 모두 같은 농사꾼이다. 역할을 나눠 일한 뒤에는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펼쳐 놓고 둘러앉는다. 작은 논 하나를 두고 여러 사람이 일손과 시간을 나누는 풍경이다.

분회 회원 조호연(야고보) 씨는 “공동의 농사일이 사람 사이의 유대를 되살린다”며 “그런 관계가 지속되기에 이 작은 논밭도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일구던 봉금의 뜰이었다. 이제 어머니는 곁에 없지만 화요일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뜰에 모인다. 흙을 돌보는 일은 사람을 잇고, 그 이음이 다시 땅을 지키는 힘이 된다. 작고 소박한 뜰에서 이어지는 농사는 그렇게 창조질서 보전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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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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