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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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의 죽음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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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던 프란치스코 성인은 1226년 10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게 되었고, 자신의 모든 수도 생활을 보호해 주시길 청하며 성모님께 봉헌한 포르치운콜라 경당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하였습니다. 동료들의 들것에 실려 아시시에서 내려오던 도중에 잠시 멈추어 당신이 사랑하는 도시 아시시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축복하였고, 그의 지친 몸은 포르치운콜라에 도착하였습니다.

성인이 선종한 곳은 초기 프란치스코 공동체의 병실이 있던 장소입니다. 전염에 대한 안전의 이유로 병실은 수도원 건물과 떨어트려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226년 10월 3일 토요일 저녁, 이곳에서 맨몸으로 바닥에 누워 자신이 ‘자매’라고 불렀던 육신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조토 디 본도네는 <프란치스코의 생애 연작> 중 프란치스코 성인의 죽음을 그린 스무 번째 프레스코화 <성 프란치스코의 죽음과 승천>에서 죽음의 순간 한 공간에 두 세계를 함께 그려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랫부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성인의 유해 앞에서 슬퍼하는 형제들과 아시시의 성직자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구름에 가려진 천상 세계를 표현하고 있고 프란치스코의 영혼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올라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자매라고 불렀던 프란치스코에게 이 순간은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을 영원히 만나게 되는 기다림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인은 천상으로 오르는 그 순간에도 팔을 벌려 언젠가는 자기처럼 죽음의 자매를 만나 올라올 세상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선종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믿었지만, 미사 중에 빵의 변화를 믿지 못하듯 곳곳에서 의심의 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열렬한 후원자이고 시성식까지 주례했던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도 이 의심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성 프란치스코가 교황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오른팔로 피가 흐르는 옆구리 상처를 보여 주며 왼팔로는 교황의 팔을 들어 유리잔을 가져와 흐르는 피를 담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교황은 누구보다도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확신하였으며 교회에서는 처음 공식적으로 예수님 오상의 상처임을 선포하게 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이끌려는 프란치스코의 꿈은 세상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들에게는 직접 내려와, 치유해 주었고 영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은 기도로써 천국으로 이끄시려 하였습니다. 조토 디 본도네의 <프란치스코의 생애 연작> 중 스물일곱 번째 프레스코화 <죽음에서 살아난 여인의 고해성사>에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냐(Campagna) 지방의 마라노 산 근처에서 성인을 존경하며 닮으려고 했던 한 여인의 일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여인은 죽었고 가족들과 본당 신부는 그녀의 시신 옆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 앉아 옆에 있던 신부님을 불러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죽기 전 알고 있던 큰 죄를 고백하지 않아 지옥으로 갈 처지였는데,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다시 깨어나 고백성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통회한 여인은 본당 신부에게 고백하였고 그녀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했던 사탄은 천사에게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편 위에 무릎을 꿇고 여인이 다시 깨어날 수 있도록 예수님에게 전구를 청하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가 보입니다. 육신에 대한 치유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천국을 가기 위한 영혼의 치유는 온전한 성찰과 반성을 통한 회개와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고백성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사냥꾼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한 가지만 생각하는 습성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나무에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만들어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놓아둡니다. 원숭이는 과일을 꺼내기 위해 손을 넣어 과일을 잡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손을 뺄 수가 없습니다. 구멍에서 손을 빼내기 위해서는 맨손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냥꾼이 다가와도 원숭이는 과일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과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유와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데도 끝내는 놓지를 못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사는 동안 우리도 이런 덫에 종종 걸려들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놓으면 되는데 오히려 더 잡으려고 합니다. 더 가지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놓는다는 단순함을 버리고 더 잡는다는 복잡함을 선택합니다. 우리의 손은 잡을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청하면 주실 것이라는 말만 생각하고 매일매일 주소서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청하는 대로 주십니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하늘에서 오는 은총의 선물을 잡을 손이 없는 것입니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있어야 합니다. 받으려면 먼저 버려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보여 준 분이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성인은 가난하실 때 풍성해졌고 겸손해질 때 들어 올려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부족함이 아니라 나눔이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처럼 물질도 나누면 두 배가 되는 기적을 주님께서는 빵의 기적으로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은 그가 가진 재물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도 아버지처럼 부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부자로 살면서 나눔의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물의 종으로 살지 않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렸습니다. 우리는 놓는 순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놓을 수 있는 용기가 바로 믿음입니다. 어쩌면 이 믿음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놓아버리는 것처럼 단순할 수도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비워진 손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랑과 은총을 차고 넘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은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과 나누었고 세상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선종하신 이후에는 자신이 받은 은총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와서 나누었습니다. 성인께서 선종하신 지 80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란치스코의 유일한 희망은 주님이 원하신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임을 기억하며 총 22편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다음 편부터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영향을 준 수도회들에 대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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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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