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에 작업실을 연 지 15년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틈틈이 들러서 책 읽고, 글 쓰면서 여유를 즐겨 보자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텃밭과 나무들은 나를 작업실에 가만히 앉혀 두지를 않았다. 봄에는 다투어 피는 꽃들을 돌봐야 했고, 여름에는 모자이크처럼 뿌려놓은 채소들을 챙겨야 했고, 가을에는 얼마 되지 않는 배추와 무가 손길을 기다렸다. 올해처럼 가물 때는 매일 물을 줘야 했다. 물주고, 거름 주고, 김매고. 손이 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쉬려고 왔다가 된통 일거리만 뒤집어쓴 꼴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주일미사였다. 차를 몰고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은근히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나갈 거요?” 아내는 “우리 본당으로 가야지” 하며 당연한 일을 왜 묻냐는 눈치였다.
나는 솔직히 구룡포성당에 가고 싶었다. 집과 가깝다는 점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끄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신부님의 유쾌한 매력 때문이었다.
대영광송이 시작되면 신부님은 탬버린을 꺼내 박자를 맞추고, 신자들은 손뼉으로 호응했다. 어깨가 들썩일 만큼 흥겨운 미사. 분심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말 배우기. 화면에 베트남 글자가 떠올랐다.
<lộng lẫy>
“오늘은 ‘멋져요’입니다. 우리 흔히 말하잖아요. 누군가를 칭찬할 때 엄지를 치켜들며 ‘당신 멋져요’ 하잖아요.”
그러고는 뒷줄에 앉은 베트남 신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원어민 발음으로.”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일어서서 크게 소리쳤다. “롱 러이!”
우리는 그를 따라 어설픈 발음으로 소리쳤다. 신부님은 관현악단 지휘자처럼 크게 팔을 휘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좋아요. 다시 한번!”
베트남 신자는 더욱 크게 ‘롱 러이’를 외쳤다. 나는 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약간은 멋쩍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주변에 앉은 베트남 신자들 모두 밝게 웃고 있었다.
고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멀리 타국으로 떠나온 사람들. 낯선 시골 바닷가까지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이 많을까. 그들은 그들의 말을 힘차게 외치며 위안을 얻고 있었다. 자기네 말을 우리에게 가르치며 비로소 활짝 웃고 있었다.
구룡포와 호미곶은 반농반어로 생활을 꾸려가는 지역이다. 그래서 외국인 선원들이 있는가 하면 농촌 일손을 돕기 위한 계절 근로자들도 많은 편이다. 신부님께서 미사 중에 베트남 말을 익히게 하는 데는 그들을 위로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출발점이요, 우리 신자들에게는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 받는 우리의 형제요 자매임을 가르쳐 주고자 하는 마음이리라.
미사가 끝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또 일주일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 넌지시 아내에게 물어보곤 한다.
“신부님이 참 유쾌하신 분이지?”
“맞아. 신부님과 미사를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져.”
이 가슴 가득한 기쁨. 호미곶에 자리 잡기를 참 잘했다.
“우리 신부님, 롱 러이!”

글 _ 김일광 요한 사도(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