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무엇을 찾는지 돌아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마다 먼저 찾는 것은 다르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의 주된 관심사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전례 시편 63,2 참조)라고 노래합니다. 지혜서도 “지혜를 찾으려고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지혜 6,14)고 합니다.
화답송에서 ‘찾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샤하르’는 ‘일찍 찾다’, ‘부지런히 찾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새벽’을 뜻하는 명사와 어휘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배경에서 화답송의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루의 이른 시간에 기도한다는 뜻을 넘어, 삶의 모든 순간에 하느님을 먼저 찾고 그분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는 신앙인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제1독서는 지혜가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어떻게 응답하는지 들려줍니다. 지혜는 자신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이들에게 발견될 뿐 아니라, 자신에게 맞갖은 이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다가가 만나주기도 합니다. 여기서 ‘찾다’로 옮긴 그리스어 ‘제테오’는 무엇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구하고 추구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이 지혜를 찾을 때뿐 아니라 지혜가 인간을 찾을 때도 이 동사가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그분의 현존과 뜻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며, 지혜가 먼저 다가오는 모습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그 사랑에 응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찾음은 깨어 있는 기다림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잠이 들었지만, 신랑을 맞이할 준비는 달랐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한밤중에 신랑이 왔을 때 그를 맞이하고 기쁨으로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지혜는 신랑이 언제 오더라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을 새벽부터 찾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마음은 깨어 있는 기다림으로 이어집니다. 찾음과 기다림은 주님과의 만남을 향한 같은 갈망의 두 모습입니다. 참된 기다림은 오실 주님을 믿으며 오늘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은 죽음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듯이, 그분을 믿는 이들도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기에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과 함께할 날을 기다립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누구를 찾고 무엇을 기다리는지 묻습니다. 새벽부터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지혜를 구하며 언제라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의 기다림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끝내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불러 영원한 생명과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하느님께 시선을 두고 그분의 뜻을 찾으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그분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합시다.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오늘 찾아오시는 그분을 알아보고, 오늘 사랑을 시작합니다.

글 _ 전봉순 그레고리아 수녀(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