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열풍이 불던 2021년, 저는 주식으로 큰돈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계속되는 큰 손실에 스트레스를 받아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고 세상과 나 자신 그리고 하느님까지 원망하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에 있던 직장이 인천으로 옮겨 오며 직장 내 위치도 불안해지고 어쩔 수 없이 타지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시간만 나면 혼자 술을 마시며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현실을 받아들인 저는 다시 용기를 내 찬양 활동을 이어가고자 인천가톨릭합창단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단원 중 한 분인 카타리나 자매님으로부터 원래 당신이 걸으려고 우연히 챙겨 든 ‘인천교구 도보순례’ 책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책자를 들고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걷는 일이 제 삶의 버팀목이 돼 줬습니다.
제가 걸은 첫 인천 순례길은 도심의 보도블록 길이었습니다. 술과 스트레스로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딱딱한 길을 오래 걷다 보니 발목과 허리가 부서질 듯 아팠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고 계속 오기를 부리며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 기도보단 제 삶에 대한 후회와 자책, 자괴감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어느새 그 걸음은 순례가 아닌 스스로를 다그치는 고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자신과 싸우던 저는 결국 점점 걷기 어려워졌고, 그날 예상 시간을 훨씬 넘겨 인천 동춘동성당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날은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였습니다. 성당에 도착해 보니 미사 시간이 되어 성전이 소등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성전 입구에서 지친 채 웅크리고 있었는데 마침 한 봉사자분이 오셔서 맨 앞자리가 비었다며 빨리 가서 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울감으로 사람들을 피하던 차에 땀투성이, 운동복 차림으로 심지어 부활초도 없었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거절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봉사자분께 붕붕 떠밀려 맨 앞자리로 갔습니다.
그렇게 맨 앞자리에 앉아 보니 옆에 계시는 아주머니께서 부활초를 세 개나 켜고 계시는 게 보였습니다. 그분은 저를 슬쩍 보시더니 이내 초 한 개를 내주십니다. 민망하지만 감사하게 받아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봉헌 시간이 되자 아차 싶었습니다. 헌금도 준비를 못 했던 것입니다. 원래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미사에 참석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날은 정말 스스로가 한심했습니다.
‘그래, 미사에 온 것만 해도 어디냐! 열심히 성가나 부르자’ 하던 제게 갑자기 아주머니께서 헌금하라고 돈을 주십니다. 봉헌 시간이 끝나기 전에 얼른 봉헌하라고요. 민망하지만 감사히 받아서 엉거주춤 헌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성체 후 묵상 때 2차 특별 헌금이 있는 게 아닌가요? 이번에도 아주머니께서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에 미사가 끝나고 돈을 갚겠다고 말씀드리자 ‘하느님께 봉헌했다 생각한다’며 극구 사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생면부지인 제게 친절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날따라 나그네 같은 처지였던 저는 아주머니가 베풀어 주신 도움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부활초를 세 개나 켜신 연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글 _ 원대식 요한 세례자(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