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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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복음] 유능한 ‘무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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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자주 묵상하곤 합니다. 어떨 때는 다양한 토양에, 어떨 때는 씨앗이 가진 힘에, 또 어떨 때는 씨 뿌리는 사람의 너그러움에 주목합니다. 이번에는 씨 뿌리는 사람의 ‘무능함’이 내 눈길을 끌었습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땅을 확인조차 하지 않다니, 정말 무능한 사람이 아닌가요!

만약 무언가를 심어야 한다면 가장 먼저 토양을 살피고, 땅을 일구고, 적절한 조건인지, 기후나 습도는 어떤지 등을 확인할 것입니다. 그래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왜 씨 뿌리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씨앗이 척박한 땅에 떨어진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좋은 땅으로 가던 길에 벌어진 실수였을까요? 아니면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런 분석을 염두에 두신 것은 아니겠지만, 이 비유는 여러 질문과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너그러움입니다. 그는 땅의 상태나 수확 여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에나 씨를 뿌립니다. 조건 없는 너그러움입니다.

그는 흙이 없는 곳에 떨어진 씨앗은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왜 그는 좋은 땅을 위해 씨앗을 아껴두는 대신, 그것을 ‘낭비’해 버린 것일까요?

씨 뿌리는 사람은 무엇을 거둘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씨를 뿌리고 나눠 주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생각인 듯합니다. 그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그는 좋은 씨앗이라면 결국 어떻게든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씨앗은 어디에서나 열매를 맺습니다. 비록 오래가지 못할지라도 열매는 맺히는 것입니다.

농부는 화를 내기는커녕 계속해서 씨를 뿌립니다. 그는 너그럽고, 자비롭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선하고, 너그럽고, 확신에 차 있으며, 자비롭기까지 하지만 참으로 무능한 씨 뿌리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가 부적합한 땅에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것은, 어쩌면 씨앗이 결국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이 나보다 더 크기 때문은 아닐까요? 제 삶을 돌아보면, 그 질문에 ‘침묵 속의’ ‘예’라고 답하고 싶어집니다.

수많은 가시와 유혹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내 삶의 깊이. 그러나 그 속에서도 제 안의 소명, 곧 사랑의 씨앗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씨앗이 실제로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입니다. 씨앗이 열매를 맺기 위해 반드시 좋은 토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씨앗 자체가 토양을 비옥하고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한번 내기해 볼까요?

저는 하느님과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농사일에서의 ‘서툶’은, 사실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가이자 유능한 분임을 증명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분께서는 매일 제 삶과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끊임없이 씨앗을 뿌리시며, 우리에게 희망과 은총, 그리고 토양을 더 좋게 가꾸고 싶다는 열망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글 _ 이청우 마우리찌오 신부(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광주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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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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