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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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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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장용 배추 모종을 120포기 심었다. 포기 수로 보면 대가족의 김장 채비다. 처음 텃밭을 할 때부터 그렇게 많이 심은 것은 아니었다. 아들, 딸 집에 조금씩 보내려고 이웃보다 조금 많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많이 심은 것은 벌레들과의 전쟁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120포기냐? 별다른 의미가 없다. 모종 집에서 모종 한 판을 사면 딱 그만큼이다.

처음에는 직접 가꾼 배추로 건강한 김장을 하겠다는 웅대한 꿈을 갖고 딱 필요한 숫자만큼 배추를 심었다. 그런데 심은 만큼 배추가 자라주지 않았다. 손가락만 한 벌레들이 속에 들앉아서 배추를 파먹어 버렸다. 병든 것을 버리고, 벌레 먹은 부분을 다 도려내고 나니 배추는 턱 부족이었다. 뒤늦게 마트에 달려가 보아도 김장철이 지나버리니까 배추 구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모종 수를 늘려 가다 보니 120포기까지 되었다.

어설픈 농사꾼이 배추를 키우겠다며 낑낑대고 있으니 마을 할머니들이 한 마디씩 훈수를 들곤 했다. “약 안 치고 어떻게 농사를 지어.” “땅 소독을 해야 병이 덜 하지.” 심지어는 배추흰나비가 풀풀 날아오르는 것을 가리키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이 밭에 약을 안 치니까 우리 밭까지 피해가 오네.” 은근히 자기네 밭 벌레 피해가 내 탓이라고도 했다. 

그런 훈수쯤이야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으로 흘려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막상 밭에 들어설 때마다 배추 위로 나비들이 풀풀 날아오를 때는 약에 대한 유혹이 생겨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 직접 벌레를 잡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돋보기안경을 끼고, 핀셋을 들고 밭으로 나갔다. 속을 헤치고, 잎을 앞뒤로 확인하면서 벌레를 찾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춧잎 사이에는 벌레들이 알을 낳고는 거미줄 같은 막을 쳐 두기도 했고, 이미 부화한 놈들은 퉁실퉁실 살이 올라 새끼손가락만큼 자라 있었다. 일일이 핀셋으로 잡았다. 달팽이들도 단단히 한몫했다.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벌레를 볼 때마다 이웃의 훈수에 따르지 않은 후회와 함께 약을 뿌려야 한다는 유혹이 따라왔다. 괜한 고집이라는 자책이 이르렀다. 그러다가 다른 이들 하는 대로 따라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농약 가게에 들러서 농약을 한 병 샀다. 돈을 치르면서 친환경 농약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나에게 명쾌하게 말했다. 요즘 나오는 농약은 대부분 친환경이라고 하였다. 인체에 큰 해도 없고, 지속 기간도 짧아서 안심해도 된다며 내 변심을 부추겼다. 

꺼림칙하던 내 마음은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그래, 딱 한 번, 이번만 치는 거야.’ 생각을 고쳐먹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막상 집으로 돌아왔지만 또 한 번의 턱이 있었다. 아내였다. 

아내가 내 손에 들린 봉지를 보더니 뭐냐고 물었다. 농약이라고 했더니 대뜸 우리 가족 먹을 건데 약 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 맞아. 흠 없이 크게 길렀다고 표창받을 일도 아닌데 괜한 일에 매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약을 창고 구석에 집어넣었다. 까짓거, 120포기나 심었는데 20포기를 못 건지랴. 생각을 바꾸니 마음도 편안했다.

문득 생각하니 인간이란 게 그 작은 벌레와 시비나 벌이고. 참 한심하다.

글 _ 김일광 요한 사도(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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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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