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조직 사회에서 개인은 외적 압박과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윤리적 소신과 직무상의 양심을 지킬 것인지, 권력과 현실적으로 타협할 것인지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이러한 딜레마의 전형적인 사례를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스테파노) 대령 사건’에서 볼 수 있다. 박 대령은 법적·절차적 정당성과 수사의 객관성을 지키려다 직권남용, 항명,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행히 복권되었다. 그러나 권력 상부의 부당한 외압과 사법적 처벌, 신분 박탈의 위험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은 그의 결단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외압과 위험 앞에서도 인간이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 곧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서 정립한 ‘용기(fortitudo)의 덕’ 이론을 살펴보자.
거대한 외압에도 물러서지 않고 진실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
타인 공격보다는 ‘견딤’ 실천하고 굳건하게 도덕·공동선 추구해야
인간 존엄성·사회 정의 지켜내고 궁극적인 행복으로 이끌 수 있어
용기의 본질과 정념의 조절
토마스의 사상 체계에서 용기는 인간의 감각적 욕구와 정념을 올바른 이성의 지휘에 따르게 함으로써 도덕적 선을 실현하게 하는 윤리적 덕의 핵심이다. 용기는 “삶과 죽음에 관한 모든 일에서 감각적 욕구를 올바른 이성에 복종시키는 덕”으로 정의된다.(I-II,66,4)
사추덕(현명, 정의, 용기, 절제) 안에서 으뜸인 덕은 이성적 선 자체를 식별하고 구성하는 실천이성의 덕인 ‘현명(prudentia)’이다. 두 번째는 이성적 선을 인간 사회 안에서 확립하고 실현하는 ‘정의(iustitia)’다. 그다음에 오는 용기는 이성적 선의 내용을 직접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용기는 정의로운 선을 실현하려 할 때 닥쳐오는 막대한 위험과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을 없애 인간이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 주는 핵심적인 덕이다.(II-II,123,12)
또한 용기는 정념의 영역에서 ‘두려움(timor)’과 ‘담대함(audacia)’이라는 두 대립적인 감정을 올바른 이성의 명령에 따라 중용으로 조절하는 기제이다.(II-II,123,3) 위험 앞에서 지나친 두려움에 빠져 이성의 선을 저버리는 것은 ‘비겁함(timiditas)’이며, 이성적 통제 없이 무모하게 위험에 뛰어드는 것은 대담함의 과잉인 ‘무모함’이다. 토마스가 말하는 용기는 정념이 빚어내는 소심함과 경솔함을 모두 극복하고, 마땅한 때에 마땅한 정도로 두려워하고 담대해지는 이성적 통제력이다.
나아가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시민적 용기 개념을 넘어 그리스도교적 순교(martyrium)의 개념을 용기의 최고 형태로 부각시킨다. 그리스 고전에서 용기는 주로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터에서의 고귀한 죽음과 관련되었다. 그렇지만 토마스는 박해자의 압박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이성적 진리를 버리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교를 용기의 가장 완전한 행위로 규정한다.(II-II,124,2) 순교는 최고의 선이신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참사랑(caritas)’에서 비롯되며, 이성적 선과 정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놓는 인간 행위 가운데 가장 완전한 용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용기의 두 가지 구분: 공격(aggressio)과 견딤(sustinentia)
토마스에 따르면 용기가 전쟁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도덕적 행위로 드러날 때는 능동적인 ‘공격(aggressio)’과 수동적이면서도 내면적인 ‘견딤(sustinentia)’, 두 가지로 나뉜다. 세속적이고 군사적인 관점에서는 위험과 장애물을 향해 대담하게 돌진하는 공격을 용기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떠올리기 쉽다. 공격은 장애물에 맞서 덤비는 행위로, 이성이 절제하고 통제하는 분노의 정념을 도구 삼아 악을 물리치고 선을 이루려는 능동적 행위다.(II-II,123,6)
그러나 토마스는 다가오는 두려움과 고통 앞에서도 이성이 제시한 선의 자리에 확고히 서서 버티는 행위를 ‘견딤’이라고 부르고, 이를 공격보다 윤리적으로 더 높은 자리에 둔다. 토마스는 공격보다 견딤이 용기의 첫 번째이자 가장 주된 행위(principalis actus fortitudinis)라고 단언하며, 그 근거로 세 가지를 든다.(II-II,123,6,ad1)
첫째, 상대와의 힘의 관계이다. 공격은 보통 행위자가 자신이 상대보다 강하거나 적어도 비슷하다고 여길 때 이루어진다. 반면 견딤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수나 거대한 외압에 맞닥뜨려 이를 버텨내는 행위이다.
둘째, 위험의 직접성과 현재성이다. 공격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위험을 향해 나아가는 성격이 강하지만, 견딤은 지금 눈앞에 닥친 실제 위험과 고통을 현장에서 직접 받아내며 맞서는 행위이다.
셋째, 지속성과 내적 노력의 강도이다. 단발적인 공격보다 오래 이어지는 고통과 압박을 견뎌내는 일이 영혼에 훨씬 큰 내적 노력과 단호함(firmitas)을 요구한다. 외적 공격성은 일시적으로 정념이 고양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오랜 비난과 박해 속에서도 이성적 선을 거두지 않는 내적 굳건함은 영혼의 가장 깊은 도덕적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에 비추어 보면, 박정훈 대령이 상부의 비공식적 외압과 신분상 불이익, 사법적 처벌과 기소라는 치명적인 두려움 앞에서도 진실을 지켜낸 일은 단순한 혈기나 무모한 대담함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법치주의와 직무상의 양심, 사건의 진실 규명이라는 공동선을 지키기 위해 손실을 무릅쓰고 두려움을 참아낸 ‘견딤’의 덕을 실천한 것이다. 이와 달리 눈앞의 두려움에 위축되어 양심을 포기하는 것은, 토마스가 보기에 정당한 이성적 선을 버리고 불의와 타협하는 도덕적 죄이자 지나친 두려움에 굴복한 ‘비겁함’의 악습이다.
용기가 인간의 삶에서 맡는 역할은 결정적이다. 용기는 그 자체로 인간의 최종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고통이라는 정념이 영혼을 압도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현명히 파악한 올바른 판단을 저버리고 비겁함으로 물러서고 만다. 권력과 조직의 부당한 외압 앞에 놓인 양심적 구성원과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승산이 클 때 나서는 호기로운 공격이 아니다.
불의한 압박 앞에서 견뎌내는 용기의 실천이야말로 인간을 영혼의 분열에서 구하고 궁극적 행복으로 이끄는 소중한 길이다. 토마스가 규정한 용기의 덕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 거대한 조직적 외압과 윤리적 위기 속에서도 개인이 인격적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 정의를 떠받치게 하는 변함없는 윤리적 기둥이다.

글 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