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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주파수를 맞춰요] 신앙은 체험된 진리: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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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단순한 지식의 동의가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인격적인 체험이다. 이 인격적 체험이 있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나의 주님’으로 삼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을 하게 된다. 비록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삶으로 체험한 이 ‘체험된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확실성이 되어 우리를 이끈다. 이제 우리가 삶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고백하는 ‘체험된 진리로서의 신앙’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하고자 한다.

이 세상 사람 중 역사를 통하여 가장 존경을 받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가 바뀌었고, 신앙의 관점에서는 이분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인간이 살게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위대하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분 앞에 서 있다. 바로 이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이시요,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주님이시요, 나아가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하는 분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은 믿겠는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못 믿겠다”고. “어떻게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일 수 있느냐, 그것처럼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심지어 예수를 하느님이라고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허무맹랑한 것을 믿는 멍청이라고 서슴없이 비난하기도 한다. 과거에 무신론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이런 식으로 도전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가?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답변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서, 우리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머리에서 나온 ‘죽어 있는 고백’인지, 아니면 마음에서 나온 ‘살아 있는 고백’인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신앙 고백이 교회가 그렇게 가르쳤기에 단순히 앵무새처럼 되뇌는 정도의 신앙 고백인가? 아니면 나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수 있는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온 신앙 고백인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신앙 고백일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 전체를 종합하여 요약해 보자.

“예수님은 나자렛 예수님이시고 사람의 아들이시고 예언자이시고 인간이시다”라는 차원은 보이는 앎의 차원이며 객관적 진리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그다지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차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리스도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주님이시고 하느님이시다”라는 차원은 보이지 않는 신앙의 차원이며 역사적으로 수많은 논란과 반대를 받았던, 지금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차원이다. 그러나 이 차원은 진리이며 앎의 차원, 객관적 진리의 차원보다 한 차원 높은 신앙의 차원이며 체험된 진리 안에서 나온 것이기에 믿을만한 진리이다. 이 차원을 설명하기 위해 열두 제자 중 으뜸 제자인 베드로가 어떻게 신앙 고백을 하였는지 보자.

글 _ 김석태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도룡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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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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