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가톨릭학생회 ‘반촌’의 학생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동아리방’ 하나만이 아니었다. 공강 시간에 잠시 들를 수 있는 자리, 혼자서는 나가지 않았을 성당에 ‘같이 가자’고 말해주던 친구들이었다. 1958년 창립된 반촌은 회원 감소로 보금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지만, 학생들은 힘을 합쳐 공간을 지키고 중앙동아리로 다시 올라섰다. 원동력은 오래된 역사도, 사명감도 아닌, 서로를 지켜주려는 청춘들의 순수한 우정이었다.

2024년 회원이 30명에 못 미쳐 중앙동아리 지위를 잃은 반촌은 이듬해 2월 “동아리방을 비우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서울 명륜캠퍼스 임원진 4명 가운데 셋은 그전까지 활동이 뜸했던 부원이었다.
당시 회장 김이주(안나·경제학과 3학년) 씨가 “시작도 해보지 않고 흩어지기보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뒤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자”며 손을 내밀었고, 수원 율전캠퍼스 임원진까지 머리를 맞댔다. 명륜 임원진 이다현(라파엘라·문헌정보학과 3학년) 씨는 “그 말에 ‘안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최선을 다해 보고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이 커졌다”고 했다.
방학 내내 매일 홍보 글을 올려 동아리연합회 면담 하루 전 30명을 채웠다.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 동의도 필요했다. 연락처도 모르던 57개 동아리 대표를 SNS로 찾아내, 지지 서명을 받았다. 답장 없는 메시지에 마음을 졸이다 지칠 때면 서로에게 털어놓고 함께 기도했다.

결국 57명 전원의 서명으로 2025년 4월 동아리방을 지켰다. 다음 목표인 중앙동아리 재승격에는 부원들이 앞장섰다. 200명 목표의 서명 운동에 각자 10명 넘게 서명을 받아 240여 명을 모았고, 그해 10월 반촌은 중앙동아리로 돌아왔다.
여정에는 동문회인 ‘명도회’ 선배들이 함께했다. 378명이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고, 기도와 응원도 이어졌다. 선배들은 재학생과 처음 한자리에 모여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동아리방을 새로 꾸밀 성금도 모았다. 졸업 후 수십 년이 지나도 함께하는 선배들을 보며 부원들은 ‘우리도 저렇게 오래 함께하자’고 마음먹었다.
선배들의 추억이 깃든 동아리방을 지키려던 마음은 어느새 친구들을 향했다. 선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율전 회장을 맡았다던 이강민(프란치스코·스포츠과학과 3학년) 씨에게 전환점은 오랜만의 MT였다. 20명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부원이 5명 남짓이던 시절을 함께 버틴 한 친구가 펑펑 울었다. 그날 이후 그를 움직인 건 의무감이 아닌 친구들이었다.
혼자 모든 걸 떠안던 그는 2학기를 함께 꾸릴 친구 6명을 모았다. 월요일마다 모여 이름도 ‘월요일팟’이다. 비 오는 날 1층에 쌓인 동방 가구를 혼자 옮기려던 그에게 달려온 것도 이들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만난 지인을 넘어 서로를 위하는 ‘촌인’이 돼 있었다”고.
반촌 식구들은 입대를 앞둔 친구가 이발하는 자리까지 함께 지켰다. 그 안에서 신앙도 다시 피어났다. 냉담하던 부원들은 견진성사를 받았고, 신앙에 냉소적이던 부원은 율전 부회장이 됐다. 혼자 성당에 다니던 부원에게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지금 반촌은 캠퍼스마다 활동 부원이 40명을 넘는다. 올 하반기엔 이웃 봉사와 첫 축제 주점, 타 대학 가톨릭학생회와의 연합 주모임에 나서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합창단과 봉사자로도 힘을 보탠다. 이 씨는 이제야 선배들이 은퇴할 나이에도 반촌을 찾는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언제든 돌아갈 집이기 때문이다.
의무감이 아닌 ‘마음’으로 서로를 지켜낸 반촌의 1년은, 사람이 줄어 버거운 본당 청년부와 대학 가톨릭학생회에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 사명감보다는 소박한 다정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해 명륜 회장을 맡은 인혜린(크리스티나·심리학과 3학년) 씨는 “지금 함께하는 사람이 적다고 그 자리의 의미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늘 한 번 더 모이고, 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응원을 전했다.
율전 회장 어수빈(안드레아·건설환경공학부 3학년) 씨도 “한 사람에게라도 먼저 다가가는 마음이 모일 때, 모임은 서로의 신앙을 지켜주는 공동체가 된다”고 했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동방이 정말 예뻐요.” “반촌이 가족같이 편해요.” 2025년 서울 명륜캠퍼스 반촌 회장으로 동아리방 사수와 중앙동아리 재승격을 이끈 김이주 씨는 부원들의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무언가를 잘 해냈다기보다 함께 만든 시간이 잘 쌓였구나 싶다”고 말한다. 위기 당시 김 씨는 명도회 온라인 모임방에 소식을 올리며 기도를 부탁했다. 동방을 찾은 한 선배가 낡은 가구와 푹 꺼진 소파를 보고 환경 개선을 제안하자, 1960~2000년대 학번 선배들은 11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아 보냈다. 부원들은 ‘하느님의 거실’을 콘셉트로 한 리모델링을 손수 해냈다. 2025년 11월 80여 명이 모인 창립제에서는 한 선배가 1960년대부터의 사진을 일일이 스캔해 보내 준 덕분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영상을 만들었다. 새 동아리방 리본 커팅식에 이어 재학생 전원이 선배들을 향해 부르던 축가는 선후배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선배들에게 받은 사랑은 재학생들 사이로도 번졌다. 2025년 임원진은 코로나19 이후 뜸하던 명륜·율전 교류를 되살렸다. 소풍과 MT, 성지순례, 피정으로 두 캠퍼스를 이었고, 한 달에 두 번 넘게 만나며 우정을 쌓았다. 세례식과 견진성사에는 서로의 대부모가 돼 줬다. 김 씨는 “함께 기도하고 신앙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반촌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라며 “선배님들께서 물려주신 사랑과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반촌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온기, 저희도 잊지 않고 후배들에게 그대로 이어 나갈게요. 반촌이라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