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인천교구 부평1동성당에서 열린 갈산종합사회복지관의 지역사회 노인 맞춤형 웰다잉 교육 현장에서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용서’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헨리 나우웬 신부의 고백을 곁들여서. “진정한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거울 너머의 세계」 중)
사실 인간에게 용서란 하는 일도 받는 일도 버거운 숙제와 같다. 용서 못 할 상처도 끝내 포용해야 하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도 그 값을 남김없이 갚아야 하니, 존재함 자체가 형벌 같을 때도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 피터 펜윅은 「죽음의 기술」에서 훌륭한 죽음을 가로막는 것은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고, 이를 푸는 열쇠는 화해라고 했다. 화해는 상처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상처란 고통이 새어 나오는 균열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상처를 준 이와 받은 이가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창이기도 했다.
증오와 원망 속에서조차 인간은 끈끈하게 얽혀 들고, 서로에게 의미를 새긴다. 나는 너와 달리 고결하다는 듯 흠 없는 손을 내미는 게 용서였다면 그건 동정을 가장한 경멸에 불과했을 것이다.
부끄러워하며, 서로 똑 닮은 상처투성이 손으로 그 창을 열어젖힐 때, 가시처럼 서로를 찌르던 원한은 마침내 연민으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 그제야 우리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한 항성계의 미숙한 행성들처럼 서로의 궤도에 공명하리라는 희망으로.
결국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일을 비로소 아름답게 바라보게 되는 건, 맹목적인 감사에서가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서로의 빛을 되비추며 공명해 가는 인간다운 과정 속에서일지도 모른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