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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272.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하녀와 가사도우미의 수호성인.
이탈리아 토스카나 루카지방에서 태어난 성녀는 12살 때 지역 귀족 파티넬리 가문 하녀가 됐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부모에게 배운 신심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린 성녀에게 하녀일은 벅찼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느님 말씀에 따르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료 하녀와 귀족들은 아무리 힘든 일이 주어져도 기쁘게 일하는 성녀를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어리고 하찮은 하녀가 자신들보다 행복해하며 사는 모습에 배가 아팠던 것입니다. 성녀는 집안에서 왕따를 당하며 온갖 구박을 받았습니다. 귀족들은 이유 없이 성녀를 못살게 굴었고 다른 하녀들은 자신이 한 잘못을 성녀에게 뒤집어 씌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녀는 결코 화를 내거나 억울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진실을 알고 계시고 자신을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매일 자신을 비우고 낮추며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고 일했습니다.
결국 귀족들과 하인들은 성녀의 한결같은 태도에 감탄하며 성녀를 우러러보게 됩니다. 주인은 성녀에게 모든 집안 일을 맡기고 성녀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줬습니다.
성녀는 남몰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곤 했는데, 빵을 구워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했습니다. 하녀들은 주인에게 성녀가 집안 일을 소홀히 하고 빵을 빼돌린다고 일러바쳤습니다. 주인이 이를 확인하러 주방에 들렀을 때 성녀를 대신해 천사들이 빵을 굽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주인은 성녀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빵을 베풀라고 허락합니다.
성녀는 파티넬리 가문에서 48년을 일한 뒤 1272년 숨을 거둡니다. 성녀가 세상을 떠나자 루카지방을 중심으로 성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졌습니다. 하녀들과 집사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성녀에게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또 성녀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580년 신자들이 성녀 유해를 프레디아노성당으로 옮기려고 관을 열었을 때 유해는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1696년 그를 시성했습니다. 루카지방에서는 성녀 축일이 되면 빵을 구워 나눠먹으며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성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4월 28일.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St. Louis de Montfort).
1673~1716. 프랑스 출생 및 선종. 사제. 설교가. 레지오 마리애의 수호성인.
성인은 어렸을 때부터 성모신심이 남달랐다.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고 동생들과 학교 친구들에게 묵주기도 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묵주기도를 알렸다.
성모님을 좋아해 견진성사를 받을 때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덧붙여 성 루도비코 마리아로도 불린다.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느님 자비와 사랑, 성모 신심을 전했다. 또 이단에 맞서 하느님을 증명했고 「거룩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개론」과 「마리아의 비밀」 등 수많은 성모 신심 서적을 썼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수도회 `지혜의 딸 수녀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설교하던 그는 1719년 강론을 마친 뒤 열병에 걸려 숨졌다. 그는 1947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