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6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금주의 성인] (124) 성 히야친토(8월17일)

성모신심 깊은 북유럽의 사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1185~1257. 폴란드 출생 및 선종. 도미니코회 사제. 북유럽의 사도.
 
 성 히야친토는 1185년 폴란드 귀족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사제인 삼촌 영향을 받아 대학에서 신학과 교회법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크라쿠프 주교가 된 삼촌에게 사제품을 받아 사목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성인은 삼촌과 함께 로마를 방문했을 때 도미니코 수도회를 설립해 선교에 헌신하는 성 도미니코(1170~1221)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느님을 전하는 데 몸 바치겠다고 다짐하며 로마에서 도미니코회에 입회합니다.
 1222년 고향으로 돌아온 성인은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에 나섭니다. 폴란드에 처음으로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세웠고 폴란드 전역을 다니며 전교했습니다. 또 덴마크와 스웨덴ㆍ노르웨이ㆍ리투아니아 등 북유럽을 종횡무진하며 하느님을 알리고 수도원을 설립하는 데 힘썼습니다. 때문에 성인은 북유럽의 사도로 불립니다.
 깊은 성모신심으로 유달리 성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성인은 성모 마리아 전구로 치유기적을 행해 유명세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성모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인이 키예프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는데, 타타르족의 습격을 받게 됐습니다. 성당이 화염에 휩싸이자 다급해진 성인은 성체가 든 성합만을 간신히 챙겨 피신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성당 내부에 있는 성모상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의 아들아, 나를 두고 어디를 가느냐. 나도 함께 데려가 다오." 그 성모상은 장정 여러 명이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겁고 거대한 크기였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이 음성을 듣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모상을 들어 올렸습니다. 물론 그에게 성모상은 깃털보다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성합과 성모상을 들고 도망치던 성인 앞을 강물이 가로막았지만 성인이 강을 건널 때까지 강물이 말라있었다고 합니다.
 성인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하느님을 전하며 살았고, 1257년 성모승천대축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594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8월 17일. 몬테팔코의 성녀 클라라(St. Clare of Montefalco). 1268~1308.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아우구스티노회 수녀.

 성녀는 어려서부터 수도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기도생활에 전념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좀 더 엄격한 수도생활을 원했다. 이후 교구장 주교에게 아우구스티노회를 소개받고 아우구스티노회 수녀가 됐다. 성녀의 엄격한 수도생활은 그 누구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하루 일과를 침묵으로 일관하며 눈 뜬 모든 시간을 기도에 쏟아 부었다.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지내며 바닥에서 잠을 잤다. 성녀는 또 수녀원장으로 임명돼 수도 공동체를 깊은 영성으로 이끌었다. 성녀는 예수 환시를 자주 체험했는데 예수 고난에 동참하길 원한 성녀에게 어느 날 주님이 나타나 그의 가슴에 십자가를 새겨줬다고 전해진다. 이 십자가는 성녀에게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안겨줬지만 성녀는 하루하루 기쁘게 참아냈다. 성녀는 188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됐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08-1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9. 16

마르 2장 22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