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1811. 스페인 출생 및 이탈리아 선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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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동부 사라고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인은 5살 때 어머니를, 9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이 집에서 살다가 예수회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6살이 되던 해 예수회에 입회한 성인은 1762년 사제품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감옥에서 죄수를 사목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지닌 성인은 특히 사형수들에게 관심을 많이 쏟아 `사형수들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1766년 사라고사와 마드리드에 심한 기근이 찾아와 군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성인이 군중을 설득하고 사태를 진정시켜 국왕의 신임을 얻았습니다. 그러나 반대세력은 성인이 군중을 선동했다고 모함했을 뿐 아니라 왕권강화를 위해 이듬해 스페인 예수회원들에게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라고사 예수회 원장 솔데비야 신부는 이 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성인에게 원장직을 넘겼고 성인은 예수회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이탈리아 북부 페라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스페인의 탄압에 못 이겨 예수회 해체를 선언하는 짧은 교서를 발표하면서 예수회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고 성인은 볼로냐에 은거했습니다. 성무를 금지당한 성인은 20여 년 동안 책을 수집하며 예수회 역사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후 파르마의 페르난디도 공작이 교황 비오 6세에게 백러시아(현 벨로루시) 소속 준관구 설립 승인을 받자 성인은 1797년 파르마에서 다시 장엄서약을 하고 예수회에 또다시 입회했습니다.
성인은 새 회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804년에는 교황 비오 7세 허락을 받아 나폴리 공동체를 거점으로 예수회 재건에 힘을 쏟았습니다. 1807년에는 사르데냐 예수회 관구를 재건했고 로마와 티볼리, 오르비에토에서도 다시 예수회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예수회 재건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던 성인은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1811년 로마 산 판탈레오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회의 재건자`라고 일컬어지는 성인은 1933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됐고 1954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11월 27일. 성 프란치스코 파사니(St. Franciscus Fasani). 1681-1742.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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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동부 루체라에서 태어나 도나투스 안토니우스 요한 니콜라우스 파사니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인은 15살에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해 1705년 아시시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언제나 겸손했던 성인은 가난한 이와 병자 그리고 죄수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다. 또 알기 쉽게 교리를 가르치고 설교 솜씨가 뛰어나 교수, 설교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742년 루체라의 수도원에서 선종한 성인은 1951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복됐고 198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