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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155> 성녀 율리아나

성체 신심 전파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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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1258. 벨기에 출생 및 선종. 동정녀 (4월 6일)
 
 성녀는 5살 때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됐습니다. 성녀가 살던 집 근처에 있던 수녀원 수녀님들은 성녀를 수녀원으로 데려와 돌봤습니다.

 때문에 성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기도와 봉헌생활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또 수녀님들을 따라 봉사활동을 거들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성녀는 유난히 성체 신심이 깊었는데, 10대 때부터 기도 중에 성체 환시를 경험했습니다. 또 성녀에게 나타난 주님은 전례축일 가운데 성체를 공경하고 현양하는 축일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성녀에게 성체를 기념하는 날을 만들 것을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성녀는 이같은 환시를 고해 신부님께 고백하면서, 주님 뜻에 따라 성체축일 제정에 힘써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고해 신부님은 이 사실을 신학자와 주교님들과 함께 고민합니다.

 성녀가 활동하던 리에주교구 교구장은 고민 끝에 이를 받아들여 1246년 교구에서 성체 축일을 기념하는 전례행사를 갖습니다. 또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녀와 같이 성체 환시를 체험한 뒤, 1264년 그리스도 성체 축일을 온 교회가 지낼 것을 선포합니다. 이 축일이 바로 지금의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성녀는 성체 축일 제정에 노력하면서도 수녀원장으로서 성소자 양성에 힘쓰고 지역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성녀의 사도직활동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 성녀가 살던 지역은 교황파와 황제파로 나뉘어 정치적 갈등이 심했고, 성직자와 수도자들 활동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돈으로 성직을 매수한 한 본당 신부는 성녀를 모함해 급기야 성녀를 수녀원장 자리에서 쫓아냈습니다.

 성녀는 다른 지역으로 피신해 있으면서도 모든 상황을 기도로 용서하고 참아냈습니다. 성녀는 이후 성체 신심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다 선종했습니다. 교황 비오 9세는 1869년 성녀를 시성했습니다.


 
 ▲4월 4일. 성 이시도로(St. Isidore). 560~636. 스페인 출생 및 선종. 교회학자. 세비야교구장.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자들의 수호성인

 성인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성인을 포함한 4남매 모두 성인 반열에 올랐다. 성인은 세비야교구장이던 형 성 레안드로 주교 뒤를 이어 교구장직을 수행했다. 성인은 신자들을 일일이 만나며 하느님 말씀을 전했고,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 사랑을 베풀었다. 그는 중세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자였는데, 10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남겼다. 그 중 20권으로 이뤄진 「어원학」은 수 세기 간 유럽 전역에서 백과사전으로 쓰였다. 성인은 또 이단 아리우스파를 물리치는 데 힘썼고, 스페인교회 공의회를 열어 교회 전통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인은 159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시성됐고, 1722년 교회학자로 선포됐다.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7년 성인을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정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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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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