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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에 격렬히 저항, 자유 쟁취한 유다인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4) 마타티아스와 마카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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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 12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탈환한 후 25일 예루살렘 성전 정화 의식을 거행하고 새 제단을 봉헌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하누카 축제를 지내고 있다. 오리 셔먼, ‘하누카 이야기’, 캘리포니아대학교 소장.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 원정길에 오릅니다. 그는 기원전 334년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정복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메소포타미아로 돌아와 지금의 모술 북동쪽으로 30㎞ 떨어진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임금을 꺾고 페르시아를 멸망시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이 정복한 모든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헬라어는 정복지의 공용어가 됐고, 그리스풍의 도시가 건설됐습니다. 하지만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적의를 품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나 꿈에서 경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야두아 대사제에게 환대받은 후 율법과 성전 제사에 관한 유다인들의 특권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바빌론에서 숨을 거둔 후 그의 제국은 ‘디아도코이’(후계자들)라 불리는 부하 장군들에 의해 쪼개집니다. 안티고노스가 마케도니아를,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셀레우코스가 시리아와 지금의 튀르키예를 차지해 왕조를 수립했습니다. 이 시기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99년부터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습니다.

유다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와 셀레우코스 4세 임금의 치하에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바치며 몇몇 종교적 특권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다 안티오코스 4세가 임금이 되면서 혹독한 박해를 받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가 유다인들을 박해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유다인들이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민족에 동화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율법과 성전 제사를 고집해 특권을 요구했습니다. 둘째, 재물의 유혹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로마에 진 빚을 갚고 로마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민족의 신전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셋째, 정치ㆍ군사 요인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이집트와 접경지대에 자신에게 충실한 민족을 둬 정치ㆍ사회ㆍ군사적으로 안정을 구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충성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안티오코스 4세는 유다인들을 종교적으로 박해했습니다. 그는 유다인의 할례를 금지했습니다. 또 돼지고기와 율법이 정한 부정한 음식들을 먹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율법 준수를 금하고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위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워 올림푸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게 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이를 따르지 않는 유다인들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는 기원전 167년께 시작했습니다.

많은 유다인이 죽음을 두려워해 배교했습니다. 동시에 적지 않은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 4세에게 반감을 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순교로 저항했고, 어떤 이들은 무장봉기를 했습니다. 무장 항쟁의 대표 인물이 마타티아스 사제와 그의 아들들입니다.

항쟁은 리따에서 동쪽으로 12㎞ 떨어진 모데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지역 사제인 마타티아스는 이교 의식을 거행하려던 유다인들과 관리를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들인 요하난, 시몬, 유다, 엘아자르, 요나탄과 동지들을 데리고 유다 광야로 몸을 숨겼습니다. 율법에 충실했던 그들은 안식일에 셀레우코스 군대가 쳐들어오자 저항하지 않고 학살당했습니다.

마타티아스가 죽자 셋째 아들 유다가 항쟁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그의 별명은 ‘마카베오’였습니다. 우리말로 ‘쇠망치’라는 뜻입니다. 이 마카베오는 마타티아스 가문의 이름이 됩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미시아의 수령 아폴로니우스와의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벳 호론 근처에서 매복해 적을 물리쳤습니다.

유다인의 무장항쟁이 거세지자 안티오코스 4세는 기원전 165년에 유다 마카베오의 반란을 진압할 임무를 리시아스 총독에게 맡깁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엠마오에 진을 쳤습니다. 유다는 이들을 기습해 물리쳤고, 유다인들의 고유한 법과 종교 관습을 인정한다는 휴전 협약을 맺습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 12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탈환합니다. 그는 그해 12월 25일 예루살렘 성전 정화 의식을 거행하고 새 제단을 축성 봉헌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성전 봉헌 축제 곧 ‘하누카’를 제정했습니다. 이 하누카 축제는 요한 복음 10장 22절에도 나오며, 유다인들은 지금까지도 이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마카베오는 셀레우코스 왕조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은 다음 정치 독립을 위해 계속 투쟁을 했습니다. 유다의 형 시몬이 갈릴래아 원정을 떠나 적들을 프톨레마이스까지 쫓아내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또 유다는 동생 요나탄과 함께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출정해 티모테오스 군대를 물리치고, 귀환 도중 에프론 주민들과 전투를 벌여 승리합니다. 이에 대한 구약 성경 사료는 마카베오기 상ㆍ하권(1마카 1,16-28; 2마카 4─5장)과 다니엘서(다니 11,20-28)에 나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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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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