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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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을 보내시어 인류 구원사를 쓰신 하느님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8)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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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토크라토르, 6세기 이콘, 시나이산 성 가타리나 수도원, 이집트.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8; 예레 31,15)

헤로데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한 사건을 두고 마태오 복음서 저자가 인용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예언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헤로데 임금과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1세 황제 때에 베들레헴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셨고, 메시아 가문인 다윗 집안의 요셉의 아내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는 기간 중 본시오 빌라도 총독 치하의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은총에 참여하는 새 생명의 길을 인간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아드님이시고, 하느님에게서 나오셨으며(요한 13,3), 하늘에서 내려오셨고(요한 3,13),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1요한 4,2)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 저자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4.16)고 증언합니다.

‘예수’는 히브리말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주님 탄생 예고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분께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루카 1,31 참조) 이 이름은 주님의 신원과 사명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 역사에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종살이하던 집에서 구해 내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죄에서도 구해 주셨습니다. 죄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오직 하느님만이 그 죄를 없애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죄로부터 보편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해 내시기 위해 당신 외아드님을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구원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하느님의 이름이며, 이제 강생하여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시어, 모든 사람은 이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32 참조)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뜻하는 헬라어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의미하는 신적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고유한 이름이 됩니다. 메시아는 왕이며 사제로서, 또한 예언자로서 주님의 성령을 통해 기름 부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 예언자, 왕의 삼중 임무 안에서 메시아에 대한 이스라엘의 희망을 채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사명, 곧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본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라고 선포했습니다.(사도 9,20 참조) 이 고백은 처음부터 사도들과 초대 교회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영광을 받은 인성의 권능 안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4)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이미 윗글에서 설명했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보다 명확하게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말씀’은 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458-460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 곧 말씀과 행동, 침묵과 고통, 존재와 표현 방식은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4,9) 예수님의 전 생애는 ‘속량’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필리 2,8) 아버지께 사랑으로 온전히 순종하시어,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을 의롭게 하는 고난 받는 종의 속죄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당신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들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입니다.(1코린 15,3-5 참조)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의 약속과 예수님께서 사시는 동안 하신 약속의 실현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인간을 위해 당신 구원의 역사 전체를 총괄적으로 실현하셨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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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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