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룩서는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 수록돼 있지 않은 제2경전에 속한 예언서입니다. 따라서 바룩서는 헬라어 「칠십인역」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작품입니다. 「칠십인역」은 바룩서를 ‘Βαρουχ’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Baruch’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바룩서’로 음역해 표기하고 있습니다. 바룩은 우리말로 ‘축복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은 ‘히브리인들이 바룩서를 읽지도 않고 지니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바룩서를 라틴말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가타」에 수록된 바룩서는 예로니모 성인이 옮긴 것이 아니라 고대 라틴어 역본입니다.
「칠십인역」은 예레미야서-바룩서-애가-예레미야의 편지-에제키엘 순으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불가타」 바룩서는 ‘바룩서 본문’(1─5장)과 ‘예레미야의 편지’(6장)을 합쳐놓았습니다. 그리고 「불가타」는 예레미야서-애가-바룩서-에제키엘서로 배치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의 전통을 따라 바룩서를 애가와 에제키엘서 사이에 놓고,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룩서의 마지막 장인 6장으로 싣고 있습니다.
바룩서는 현재 헬라어 사본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바룩서의 1장 1절에서 3장 8절까지는 본래 히브리어로 저술됐고, 나중에 헬라어로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편지도 바빌로니아 유배 지역에서 본토인들이 숭배하는 우상을 경계하기 위해 본래 히브리어로 작성됐으나 후대 헬레니즘 셀레오코스 왕조 시대에 헬라어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룩은 힐키야의 현손이며 하사디아의 증손이고, 마흐세야의 손자이며 네리야의 아들입니다.(바룩 1,1) 그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비서이고 친구이며 유다 왕궁의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지시로 하느님의 신탁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고 백성에게 읽어 주었습니다.(예레 36,1-8) 유다 왕국 여호야킴 임금이 이를 칼로 조각내 불태워 버리자 “비슷한 내용의 많은 말씀을 더 적어 넣어”(예레 36,32) 두루마리를 새로 엮어낸 자입니다. 아울러 그는 친바빌론파로 몰려 예레미야와 함께 이집트로 끌려간 후 행적이 묘연해진 인물입니다.(예레 43,1-7)
바룩은 이 책을 갈데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해 불태운 지 5년째 되던 해인 기원전 582년 다섯째 달 7일에 바빌론에서 이 책을 저술했습니다.(바룩 1,1-2 참조)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이보다 훨씬 후대인 기원전 4세기 말에서 기원전 2세기 후반 사이에 바룩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저자가 이 책을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바빌로니아의 예루살렘 점령과 유다인 유배에 관한 당시 문헌의 정보와 바룩서에 실려있는 내용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룩서는 바빌론 유배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남은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동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위로하고 구원의 희망을 주기 위해 쓰인 작품입니다. 바룩서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생긴 단절을 공인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둘 사이의 화해로 끝납니다.
바룩서는 ‘역사적 서문’(1,1-14), ‘참회 기도’(1,15─3,8), ‘지혜에 관한 명상’(3,9─4,4),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4,5─5,9), ‘예레미야의 편지’(6장)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룩서의 역사 배경을 전하는 ‘첫째 부분’에는 저술 시기와 낭독, 예배,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 성전 기물 반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를 나열한 후 고백하고 하느님께로의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는 한편,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는 참회 기도를 전합니다. ‘셋째 부분’은 이스라엘에 지혜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넷째 부분’은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권고와 위로 말씀을 시로 전해줍니다. ‘다섯째 부분’은 예레미야의 편지로 우상 숭배에 대한 철저한 배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방 우상들은 신이 아니며 무용하고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며 유다인들의 하느님이야말로 참된 신이시다고 선포합니다.
바룩서는 이스라엘의 주님만이 유일하신 하느님이시며(바룩 3,36) 전지전능하시고 창조주로서 온 세상에 대한 절대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바룩서는 유다인들의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기보다 그분을 거역하고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일어난 징벌이라고 규정합니다.(바룩 1─2장) 이러한 징벌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묻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진정한 참회를 통해 하느님께로 되돌아와야 하며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간구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바룩 4─5장) 아울러 바룩서는 ‘지혜’를 생명의 근원(바룩 3,12)이라고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율법과 동일시합니다.(바룩 4,1-4)
가톨릭교회 전례에도 바룩서 내용이 봉독 됩니다. 특히 3장 9-15절, 3장 32─4장 4절은 파스카 성야 미사 제6 독서로 봉독 됩니다.